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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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온 지구촌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코로나 기간에 아이들을 모두 출가시켰다.
난관이 닥친다고 해서 밥을 굶을 수도, 생업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그에 맞춰 어떻게든 모종의 해법을 또 모색하게 되는 것이 인간의 본능인 모양이다.
요즘 세대는 결혼식을 결혼식답게 잘 해나가고 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한때는 저게 장난이지, 무슨 결혼식인가 싶을 만큼 경박스러운 장면들을 연출하던 경우도 있었지만,
그것들이 새로운 변화를 위한 과도기였는지 최근 들어서는 너무 가볍지도,
너무 무겁지도 않게 신랑 신부가 머리를 맞대고 기획들을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그해 1월에 결혼식을 올렸다.
당시 우리 지방에서는 신부가 사는 곳에서 결혼식을 치르는 전통이 있어서
아내의 고향인 대구에서 혼례를 올렸다.
그때도 지금처럼 신부에게는 열심히 치장을 해주는 풍습이 있었지만
신랑에게는 무엇 하나 신경을 써주는 것이 없었다.
화장이라곤 집에서 사용하던 스킨 로션을 혼자서 대충 바르고,
머리는 예식장을 가기 전 동네 이발소에서 간단히 다듬는 정도가 전부였다.
예식장을 비롯한 혼례 준비도 주인공인 신랑 신부의 의견은 뒷전이었고,
양가 혼주들이 앞장서 결정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결혼식을 마친 후 신혼여행을 떠날 때의 복장은 하나같이
신랑은 짙은 색의 싱글 양복(+겨울이면 황토색 코트),
신부는 한복 차림이 그 시대의 짜맞춘 듯한 드레스 코드였다.
신혼여행지는 요즘처럼 해외여행이 활성화되기 전이어서 잘 가야 제주도였다.
형편이 여의치 못한 경우는 그마저 생략하는 사례도 많았다.
다만, 그 당시는 형편이 어려우면 어려운 대로, 넉넉하면 넉넉한 대로
저마다의 실정에 맞춰 결혼식을 치렀다면, 요즘엔 잘 사는 집이나, 그렇지 못한 집이나
너 나 할 것 없이 결혼식을 위한 초기 비용의 규모가 너무나도 커졌다.
다른 이유도 있겠지만, 오늘날 젊은이들의 결혼이 갈수록 늦어지는
주요 요인 중의 하나에 그 점도 크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지나 되돌아보면, 평생에 한 번뿐인 신혼여행을
신부에게 좀 더 기억에 남을 만한 것으로 만들어 주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모든 것이 미숙하기만 했던 때라 너무 단조롭게만 보냈던 것이 못내 미안할 따름이다.
요즘 세대의 개성 넘치는 결혼식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더더욱 그런 생각이 스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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