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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자유인。 2024. 9. 14. 04:27

 

 

혼자 노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항상 남에게 의존하게 되고,

남에게 함께 놀자고 손을 내밀었다가 거부당하기라도 하면

스스로 위축되거나 남을 원망하게 된다.

혼자 놀 줄 안다는 건 외로움을 즐길 줄 안다는 뜻이다.

외로움을 즐길 수 있다면 남에게 섭섭함 따위를 느낄 겨를이 없다.

섭섭함을 느끼지 않는 사람은 늘 여유로워 보여 주위에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러니 혼자 잘 노는 사람이 곧 여럿과 잘 어울릴 줄 아는 사람이다.

특히 나이 들어가면서 혼자 놀 줄 모르면 공연히 주위 사람을 괴롭히게 된다.

- 박혜란의 '다시 나이듦에 대하여' 중에서 -

 

 

더러 책을 읽다가 마치 내 생각을 대변하기라도 하는 듯한 글귀를 만나면 반갑다.

그런 글들은 따로 메모를 해두기도 한다.

박혜란 작가는 여성학자이자 가수 이적 씨의 어머니로서, 다수의 베스트셀러 저서를 출간한 분이다.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아 시중에 나온 그녀의 책들은 거의 다 읽어보았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려워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 보면 그 시간을 어떻게 할 줄 몰라 끊임없이 지인들에게

전화를 하는 이들을 보곤 하는데 대부분 그런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옆에서 들어보면 별다른 내용도 없는데, 단지 본인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관심도 없는 안부

전화를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돌린다. 문제는 그로 인해 듣고 싶지도 않은 시시콜콜한

남의 얘기를 억지로 들어야 하는 다른 승객들까지 괴롭힌다는 것이다.

 

내 친구들 중에도 특별히 경제적인 문제는 없는데도,

마땅히 놀 거리가 없어 퇴직 후 다시 취업의 길을 선택한 경우가 없지 않다.

일보다는 어떻게든 하루의 시간을 때우기 위한 목적이 더 커 보인다.

 

여성들의 경우 일찍부터 지속적으로 이어온 가사와 더불어 동네 이웃

들과의 교류가 있어 나이가 들어도 외로움이나 무료함을 느끼는 일이 드문데 반해,

한평생 일만을 중심으로 살아온 남성들의 경우 은퇴를 하면 당장 막막해진다.

세탁기 한 번 돌려본 적이 없으니 집에서 딱히 할 수 있는 역할이 없다.

업무적으로 만난 사람은 은퇴와 함께 다 떠나고, 동네 이웃과의 교류는 전무하니 딱히 만날 사람도 없다.

종일 집에만 틀어박혀 텔레비전 리모컨만 만지작거리니 배우자 눈에도 그런 남편이 달갑지 않다.

다는 아니겠지만, 퇴직 후 적지 않은 남자들의 현실이 대체로 이러하다.

 

젊을 때야 일에 빠져 그것이 인생의 전부인 줄 알지만, 나이가 들고 보면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자신의 삶이란 걸 비로소 깨닫게 된다. 왜 좀 더 일찍부터 준비하지 못했을까 후회도 한다.

무엇이든 인생에선 사전 훈련이 필수적이다. 음식도 이것저것 많이 먹어본 사람이 그에

대한 식견이 생기고, 옷도 입어본 사람이 패션 감각이란 걸 알게 되고, 노는 것도

놀아본 사람만이 제대로 놀 줄 안다. 시간과 돈만 있으면 언제든 가능할 거라 착각하지만,

평생 일만 해 온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마음먹는다고 안 해 본 걸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삶의 무료함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된다.

 

나는 일보다는 나의 삶, 나의 인생을 더 중시하는 사람이다.

한평생 일만 하고 산다면 무슨 재미가 있을까 싶다.

아무리 막대한 부(富)를 축적한들 살아 있는 동안 누리지 못하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일이란 오직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일 뿐, 일을 하면서 재미있어 죽겠다고 하는 사람은 없다.

물론 한창 미래를 향해 달려가야 하는 젊은이라면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들어서까지 여전히 일만 한다면 ... 

 

시간은 오직 전진만 할 뿐 되돌아가는 법이 없다.

어느 가수의 노래처럼 우리네 인생은 '연습도 녹화도 없는 생방송'일 뿐이다.

일을 떠나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아보는 건 한 번 왔다 가는 인생에서

조금이라도 후회를 줄일 수 있는 길이 아닐까. 어떻게 살 것인가 누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다.

남들이 내 마음을 어찌 다 헤아릴까.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일이 아니라면 그저

내 발길이 향하는 대로 흘러가면 그만인 것이다.

 

삶의 종착역에서 '그때 그걸 해볼걸' 아무리 땅을 치고 후회해 본들 부질없는 일.

오늘 하루가 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열심히 살다 보면,

나에게 더 이상의 내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오늘을 충실히 채우다 보면,

그런 자잘한 하루하루의 일상이 모이고 모여 한 사람의 인생이 완성된다는 

생각으로 나는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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