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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나이 되고 보니

자유인。 2024. 9. 16. 11:16

 

 

 

해마다 추석 전날 아침이 되면 나는 동네 떡집으로 향한다.

송편 구입을 위해 길게 줄을 늘어선 이들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위함이다.

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줄은 저녁 무렵이 될 때까지 줄어들 기미가 없다.

 

바야흐로 외주外注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치도, 반찬도, 송편도 더 이상 집에서 만들지 않는다.

절차도 번거롭거니와 식구가 몇 안 되는 집에서는 만드는 비용이 오히려 사는 비용보다 더 든다.

 

부모님 세대까지만 해도 모든 건 자가생산, 자가소비였다.

아버지 없는 유복자로 태어나 오로지 살아남는 것만이 전부였던,

가장으로서 식구들 배곯지 않게 하는 것이 삶의 유일한 과제이자 화두였던 선친은

시장에서 돈을 주고 먹거리를 산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낭비벽이 심해서 언제 기반을 잡을 수 있겠느냐며 불호령이 떨어졌다.

 

오늘날 현대인들의 일상이 된 문화는 언감생심, 곧 사치와 동일시되던 시대였다.

당신들의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한 푼이라도 더 아끼고 절약해

자식들에게만은 더 이상 가난의 설움을 대물림해서는 안 된다는 일념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당신들의 위대함을 사무치게 느낀다.

자신을 지켜주고 험한 세파를 막아줄 부모도, 무엇 하나 물려받은 재산도 없었던

메마른 사막과도 같은 척박한 환경에서 어떻게 가정을 일으키고 4남매를 서울의 대학까지

보낼 수 있었는지 지금의 나로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을 정도이다.

 

한때 당신들에 대한 원망도 없지 않았지만, 이 나이 되고 보니

그런 마음은 갈수록 엷어지고, 살아 계실 때 자식으로서 왜 좀 더 따뜻하게

손을 잡아드리지 못했을까 죄송스러움과 후회만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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