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그저 가만히 있으면 행복이 찾아올까? 본문
새로 산 바지를 손볼 게 있어 동네 수선집에 들렀다. 주인장은 올해 여든하나로 오랫동안 양복점을 운영하다가 맞춤옷에 대한 수요가 퇴조하면서 수선업으로 업종을 변경한 분이다. 내가 이사 올 때부터 있었으니까 최소한 20년 이상을 같은 자리에서 생업을 유지해 오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옷을 몇 차례 맡겨본 결과 꼼꼼하게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 같아 믿고 맡기는 단골집이 되었다.
오랜만에 들렀더니 주인과 웬 여성 한 분이 같이 계셨다. 부인이라고 했다. 수선을 하는 동안 커피 한 잔을 권하기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남편이 작년에 척추협착증으로 수술을 세 차례나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마비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더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하더란다. 다행히 수술도 잘 되었고, 한동안 재활치료를 거쳐 지금은 거의 정상을 회복했다고 한다. 그 이후로 남편이 일을 하다가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 부부가 같이 출근하게 되었다고 한다. 자식들은 자식들대로 아버지의 건강이 걱정됐는지 일 좀 그만하고 편히 쉬시라며 날마다 성화라고 했다.
내 부모님 사례를 들려주었다. 평생 농사를 짓던 분들이었는데 연세가 드시니 당연히 힘에 부칠 수밖에. 이제 농사는 그만하시라며 자식들이 뵐 때마다 성화였지만 언성만 높아질 뿐, 여전히 손에서 일을 놓지 못하셨다. 그러다 결국 건강이 안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손을 뗄 수밖에 없었다. 이런 풍경은 아마도 어느 집 할 것 없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자식들로서는 부모가 나이 들어 고생하는 게 안쓰러워 그런다지만, 설령 그 말을 좇아 쉰다고 한들 남은 시간을 무얼 하며 보낼 것인가에 관해서는 전혀 생각들을 안 하는 듯하다.
젊을 때야 실감을 못하겠지만, 나이 들어 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이 무료함이다. 아무리 효성이 지극한 자식이 있다고 한들 부모와 모든 시간을 함께해 주지는 못한다. 각자의 삶이 있기 때문이다. 부모가 하고 있는 일은 바라보는 입장에서 보면 힘겨운 노동일 수 있지만, 본인들에게는 그것만이 사는 낙이요, 유일한 소일거리일 수도 있다. 비교적 어려움 없는 환경에서 자라온 자식들과 달리, 더없이 고단한 세월을 살아온 부모 세대에게 일 이외에 무슨 뾰족한 소일거리가 있을까? 아무런 대책도 없이 마냥 일을 그만하라며 성화만 하는 건, 마치 가만히 앉아 죽음만을 기다리라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 얘길 수선집 주인에게 전했더니 백번 공감한다고 했다. 몸이 아파 움직일 수 없다면 모를까 건강이 허락되는 한 자신은 사는 날까지 하던 일을 계속하고 싶다고. 하루 종일 방안에 앉아 하릴없이 천장만 쳐다보는 인생은 죽기보다 싫다고. 노동이 되었건, 일이 되었건, 혹은 취미나 운동이 되었건 인간은 무릇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는다. 성장 환경이 다른 자식들의 잣대만으로 부모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려 들기보다는, 차라리 당신들이 좋아하는 무언가를 응원할 수 있다면 그것이 보다 진정한 효도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정 마음이 불편하다면 하던 일을 계속하게 하되, 그 양을 적절히 조절하는 방향으로 타협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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