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송년의 계절 본문
정치가 국민들의 가슴을 멍들게 해도,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우리대로 삶을 이어가야 한다. 유권자의 뜻을 받든 대의정치라고는 하지만, 선택된 일부 소수가 다수 국민의 뜻을 온전히 대변하지는 못한다. '국민'의 이름으로 포장된 '그들만의 논리'인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연말을 앞둔 어느 날 친구들의 송년회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 만나 지금껏 이어오는 모임이다. 애초 아홉 명으로 출발했지만, 그중 두 친구는 너무나도 이른 나이에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모두 객지 자취방에서 연탄가스 중독에 의한 사고였다.
남은 일곱 명의 친구 중 반은 서울과 수도권에, 나머지 반은 지방에 거주하고 있다. 개인 사업이나 여전히 현직에 있는 친구들이 반, 나처럼 자유인 신분이 또 다른 반이다. 모임이 있을 때면 결석자가 거의 없을 만큼 출석률이 높다.
친구들의 모임도 가다 보면 순탄하지 않을 때가 많다. 친구라는 이름으로 만나긴 했어도, 각기 살아온 환경이나 가치관이 다르다 보면 미처 생각지도 못한 문제들이 불거질 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혜롭게 수습이 될 때도 있지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때도 없지 않다.
어떤 모임을 오랫동안 유지한다는 건 서로가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행히 지금껏 우리는 불미스러운 일 한 번 없이 잘 이어오고 있다. 정기 모임은 부부가 함께하지만, 송년회는 친구들끼리만 만나 하룻밤을 같이 지새운다. 지방에 사는 친구들을 배려한 것이다.
다들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동행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벌써 두 명의 부인들 건강이 여의치 않다. 그로 인해 부부 동반 모임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은 지가 여러 해다. 근황을 물어보고는 싶지만 특별히 차도가 없는 상황에서 자칫 당사자의 상처만 건드리는 것 같아 입 밖으로까지 꺼내지는 못한다.
남편들만 재미있게 놀다 아내 혼자 기다리는 집에 빈손으로 들어가는 건 염치없는 일이다. 어차피 쓰기 위해 모으는 회비인데 필요할 때 의미 있게 쓰자고 했다. 마침 친구네 집 근처에 맛있는 빵집이 있어 하나씩 들려보내기로 했다. 효과는 만점이었다. 현관을 들어서는 내 손에 들린 노란 종이가방을 보던 아내의 얼굴이 환해졌다. 다른 친구네들 집도 같은 분위기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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