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부질없는 과거와의 비교 본문
오랜만에 친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사는 곳이 서로 달라 자주 만나지는 못해도, 두 사람은 누구보다 신뢰가 깊다. 학창 시절 그는 운동선수였다. 육상 선수로 활동하면서 지역에서는 그런대로 두각을 나타냈지만, 미래가 보이지 않자 일찌감치 포기하고 다른 길을 선택했다. 얼마간의 직장 생활을 거친 후 자기 사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직원 40여 명의 제법 규모가 있는 사업체를 경영하면서 자식농사도 잘 지어 모두 출가를 시켰고, 나처럼 내외끼리만 살고 있다.
그는 내가 늘 부럽다고 말한다. 친구 사이인데도 '존경스럽다'는 표현까지 한다. 심지어 자식들에게까지 나에 관한 얘기를 종종 한다고 한다. 같은 친구끼리 너무 과한 칭찬은 예의가 아니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본인의 생각이 그러하다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다. 사실 여부를 떠나 친구로서 그런 생각을 갖고 있다는 자체만으로 나로선 고마운 일이다. 흔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어쩌다 통화를 하게 되면 한 시간이 훌쩍 넘어가기 일쑤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는 것들을 내 앞에서는 가감 없이 털어놓는다. 나와 통화를 하고 나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고, 몰랐던 걸 새로이 배우는 게 많단다.
친구의 가장 큰 장점은 모른다는 사실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르면 모른다는 걸 솔직히 인정할 줄 알고, 누군가에게 배울 점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노력한다는 것이다. 지극히 당연한 일임에도 많은 이들이 그러지 않는다. 모른다고 하면 행여 체면이 깎일 걸 염려해서인지 좀처럼 그것을 인정할 줄 모르고, 모르는데도 기어이 아는 척을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결국 실체는 드러나고 만다. 전자의 경우 갈수록 발전하지만, 후자의 경우 거기에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고 만다.
그가 옛 고향 친구들을 만날 때면 더러 자신을 시기하는 속내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유인즉,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본인들이 공부도 더 잘했고, 더 열심히 했는데, 공부는커녕 '엉뚱한 짓'만 하고 돌아다니던 친구가 지금은 오히려 자신들보다 더 '잘먹고 잘산다'는 사실이 배가 아프다는 것이다. 몸은 현재에 존재하면서 생각은 여전히 과거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대체로 사람들은 상대방의 지나온 과정은 살펴볼 생각을 않고 결과만을 놓고 함부로 판단할 때가 많다. 그 역시 다른 친구들이 그런 말을 할 때면 안타깝다고 했다. 오늘의 사업을 일구기까지 고생담을 말하자면 끝이 없는데, 자신이 마치 아무런 노력도 않고 '거저먹은 것처럼' 보고 있다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음에도 부질없는 과거와의 비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 공부를 잘한다는 건 학교에서는 최고의 덕목일지 모르지만, 사회에서까지 그대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이른바 SKY대를 나온 이들은 하나같이 다 '떵떵거리며' 잘살아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세상이 변했으면 변한 만큼 그에 걸맞은 사고 체계를 갖춰야 하건만, 언제까지 '왕년' 타령만 일삼으며 아까운 세월을 허비할 것인가. 이는 마치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가 아이들의 의식과 교과 환경은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데도, 맨 처음 교단에 설 때 작성한 케케묵은 교안을 지속적으로 수정, 보완할 생각은 않고 평생을 우려먹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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