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던바의 수(Dunbar's number)

자유인。 2024. 8. 9. 14:50

 

 

 

한동안 연락을 못했던 친구와 오랜만에 통화를 했다.

더운 날씨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그동안 별일은 없었는지 등등.

 

세상을 살면서 많은 이들을 만나기도, 헤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 많은 관계를 언제까지 다 안고 갈 수도 없는 일이다.

그중 운이 좋은 일부만 살아남을 뿐이다.

 

영국의 인류학자인 로빈 던바(Robin Dunbar) 교수는 한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감당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최대 숫자는 150명이라고 했다.

그 이상을 넘으면 제대로 된 관계를 유지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른바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한다.

 

나 역시 살면서 많은 이들을 만났지만, 지금껏 관계를 이어가는 숫자는 제한적이다.

그들의 공통점은 종종 서로 상대방의 안부를 물어준다는 데 있다.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 주고, 슬픈 일이 있으면 함께 슬퍼해 준다는 점이다.

 

한때는 관계가 유지되다가 시나브로 멀어진 경우도 있었다.

그중 두 사람의 사례다.

 

한 사람은 잊을 만하면 전화를 걸어오곤 했었다.

그때마다 레퍼토리는 비슷했다. 한결같은 자기 자랑이었다.

상대의 안부 한 번 묻는 법이 없었다. 자랑을 넘어 더러 나의 인격까지 건드릴 때도 있었다.

'나는 이렇게 잘나가는데, 당신은 뭐 하냐'라는 식이었다. 나도 언제까지

그의 일방적인 자랑만을 받아주기에 지쳤고, 본인 역시 나중에는 더 이상 자랑할 것이

없어졌는지 갈수록 전화의 빈도가 줄어들면서 언제부터인가 끊어지고 말았다.

 

또 다른 한 사람.. 참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다.

활동 범위가 넓어 영자신문에 칼럼까지 쓰던 인물이었다.

신문에 글을 올릴 때마다 나에게 보내오곤 했다.

그때마다 나대로의 감상문을 열심히 적어 보내주었다.

대체로 누가 글을 보내면 그런가 보다,라고 눈으로만 읽고 마는 것이 상례이기에

잊지 않고 꼬박꼬박 소감문을 보내주니 나름대로 재미를 느낀 모양이었다.

 

글을 보내는 빈도가 부쩍 잦아졌다. 하지만 내 생업이 있는 가운데

일일이 그것을 다 읽어주고 촌평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쩌다 촌평을 빠뜨리기라도 하면 '요즘 바쁘냐'라며 문자를 보내오곤 했다.

나의 안부가 궁금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이 보낸 글에 왜 반응이 없냐는 뜻이었다.

어쩌다 연락을 하면서도 단 한 번도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에 관해서는 묻는 법이 없었다.

연락을 할 때는 오직 자신에게 새로운 자랑거리가 생겼을 때뿐이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내가 반응이 없자 그 역시 잠잠해졌다.

 

어느 일방의 관심으로만 존재하는 관계는 생명력이 길지 못하다.

남녀 간 사랑이 그렇듯,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누군가 나에게 관심을 표시해 주기를 기대하는 것처럼, 상대방 역시 누군가가

자신에게 관심을 표시해 주기를 바라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것들이

상호작용을 통해 지속성을 견지할 수 있을 때 인간관계도 비로소 발전하게 된다.

 

누군가와 오랫동안 변치 않는 인간관계를 유지한다는 건

서로가 그만큼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라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던바 교수가 제시한 150명이란 숫자도 나로선 너무 많다.

살아보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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