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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 노량진수산시장 본문
서울 동작구에 위치한 노량진(鷺梁津)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본래 배가 드나드는 나루터였다.
우리나라 지명 중 진(津)이 들어가는 곳은 모두 같은 유래를 지니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오늘날처럼 다리가 없던 조선시대에는 서울과 과천, 시흥 등을 연결하는 주요 간선로 중 하나였다고 한다.
현대로 넘어오면서 노량진은 또 다른 이유로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전국의 수많은 입시생이나 재수생, 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학원의 성지'였기 때문이다. 일찍이 '대한민국의 모든
학원은 노량진으로 통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여기를 거치지 않은 수험생이 없을 정도이다.
최근 들어 인구 감소, 교육 환경 등의 변화로 경기가 예전 같지 않은 모양이다.
또 다른 하나는 노량진수산시장이다.
기록에 따르면 현재의 자리에 수산시장이 개장된 것은 1975년 4월이었다고 한다.
이전까지는 서울역 근처에 있던 경성수산물주식회사가 모체로,
해방 후 서울수산시장주식회사로 재발족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고 전해진다.
1985년 가락시장이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노량진은 서울에서 유일한 수산물 전문시장이었다.
오랫동안 재래식 건물에서 영업을 해오던 노량진수산시장은 2015년 들어
한차례 거센 홍역을 치른다. 바로 시장 현대화 계획에 따라 신축 건물이 들어서면서
매장 이전을 앞두고 촉발된 회사와 상인 간의 갈등이었다. 이전보다 협소해진
공간과 비싼 임대료 때문이었다. 이후 어떻게 갈등이 봉합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현재는 옛 건물은 완전히 사라지고 새 건물에서 모든 영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과거에 비해 외관은 번듯해졌지만, 분위기는 오히려 후퇴한 느낌이다.
개축 이전 식구들과 먹기 위해 이른 아침 전철을 타고 회를 사러 간 적도 더러 있었고,
퇴근 후 지인들과 가끔씩 찾기도 했었는데, 나로선 그때가 훨씬 더 좋았다.
지금보다는 훨씬 안정감이 있었고, 가게마다 따로 마련된 공간도 한결 여유로워
한잔하기에도 좋았다. 신축 건물로 이전하면서 1층에서는 회를 살 수만 있고,
먹는 곳은 5층으로 일원화시켰는데 여러모로 불편하다.
우선 상인들의 불만처럼 1층 가게마다 허용된 매장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
그렇게 되면 판매자나 소비자 모두에게 이래저래 불협화음이 생길 소지가 크다.
5층 식당은 본관과 별관으로 나뉘어 있는데 초행자는 제대로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1층에서 회를 주문하면 스티로폼 접시에 담아 포장 배달을 해 주는데,
편의성만을 앞세운 용기가 영 마음에 안 든다.
게다가 제한된 공간에 한꺼번에 많은 손님이 들이닥치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특히 송년 모임이 많은 연말이면 아비규환이 따로 없다. 이번에 모임이 있어
들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다행히 별실이 있어 다소 덜하긴 했지만, 안정감 면에서
별반 차이가 없었다. 떠도는 평판 또한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가격 문제가
가장 많이 거론된다. 손님에 따라 판매가가 매번 다르다는 것이다. 혹자는 악명 높은
인천 소래시장에 비유하며 차라리 동네 횟집이 낫다는 얘기도 한다.
회를 먹으러 노량진으로? .. 나로선 ... 글쎄다.
굳이 간다면 어수선한 현장에서 쫓기듯 먹기보다는 차라리 포장해서
집에서 여유롭게 먹는 쪽을 선택하겠다. 현대화가 마냥 긍정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란 걸 노량진수산시장을 통해 새삼 확인하게 된다.
상인들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소비자 시각에서 볼 때 그렇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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