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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성의 법칙

자유인。 2024. 9. 5. 04:30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나가 얼마간 다른 곳에서 산 적이 있었다. 거기는 주방 수도가 발로 밸브를 밟아야만 물이 나오는 시스템이었다. 몇 년을 그렇게 살다가 현재 사는 곳으로 복귀했는데, 여기는 수도 밸브만 틀면 물이 나오게 되어 있어 별도로 발을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예전 습관이 남아 있어 한동안 수도를 틀 때마다 나도 모르게 발을 밟곤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우리가 사용 중인 문명의 이기 대부분은 소형화 내지 간결화의 길을 걷고 있다. 웬만한 가구와도 같았던 텔레비전은 얇은 모니터 하나로 축소되었고, 군용 무전기와 다름없었던 휴대전화기는 손안으로 들어올 만큼 작아졌다. 본체와 모니터가 분리되어 차지하는 공간이 더없이 넓었던 컴퓨터 역시 일체형으로 바뀌었다. 예외가 있다면 자동차만 갈수록 대형화 추세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의 크기를 기준으로 설정했던 아파트 주차 공간에 요즘 자동차가 진입하기 어려워진 건 바로 그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포토샵 강의를 듣고 있다. 일주일에 세 시간씩 3개월 과정의 수업인데, 평소 관심 있는 분야라 시간 가는 줄 모를 만큼 재미를 느끼고 있다. 사진을 즐기는데 꼭 필요한 부분인데도 혼자서 일부 몇 가지만 수박 겉핥기 정도로 익혔을 뿐, 한 번도 제대로 배워본 적이 없어 이번 기회를 통해 기초부터 착실히 밟아보기로 했다.

첫 수업이 있던 날 책상마다 놓여 있는 컴퓨터 모니터를 켜야 하는데 전원 버튼을 아무리 눌러도 반응이 없었다. 옆을 돌아보니 이미 모니터가 켜진 곳도 있었고, 나처럼 어쩔 줄 몰라 헤매는 수강생도 있었다. 할 수 없이 강사에게 도움을 요청했더니 컴퓨터 형태에서 비롯되는 문제였다. 강의실에 비치된 컴퓨터는 본체와 모니터가 분리된 구형(TG .. 그 이름조차 아련한)이어서 본체 전원 버튼을 눌러야 함에도 모니터에 있는 버튼만을 계속해서 눌렀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한때는 분리형 컴퓨터를 사용했지만, 일체형으로 바꾼지 오래되어 예전 기기의 사용법은 아예 잊고 있었기에 강의실에서 사용하는 컴퓨터 또한 당연히 일체형일 거라는 생각은 혼자만의 착각이었던 것이다. 왜 아직도 이런 구형 장비를 쓰고 있는지 물으니 지자체 예산 때문이라고 했다. 이렇듯 한 번 굳어진 습관은 그 방향으로 계속 달리려는 관성의 법칙이 작용하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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