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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서툰 토론 문화

자유인。 2024. 11. 2. 05:25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입주민 회의가 있었다. 안건은 그동안 특정인들에 의해서만 점유되고 있는 공동구역 내 테니스장을 좀 더 많은 입주민들이 활용할 수 있도록 보다 합리적인 방안을 모색해 보자는 것이었다. 여러 의견들을 듣고 그중 합리적인 대안들을 몇 가지로 집약한 후 전체 주민들의 투표를 통해 향후 방향을 결정해 보자는 것이었다. 결정에 앞서 사전 의견을 청취하는 자리였다.

 

그런데 변경 계획에 반감을 갖고 있던 테니스 동호인을 비롯한 일부 주민들이 회의 진행을 방해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다른 주민들의 의견을 듣기도 전에 안 되는 이유부터 내세워 어떻게든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고 했다. 특정인의 재산권이 걸린 것도 아니고 전체 입주민들을 위한 배려 차원의 문제였다.

 

이 땅에 살면서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부분 중 하나는 우리 사회는 토론 문화에 더없이 미숙하다는 점이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세상이 달라진 오늘날에 와서도 크게 달라진 것 같지 않다. 이는 정치뿐만 아니라 직장이나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맞닥뜨리는 장면이다. 회의나 토론의 기본 취지는 여러 사람들로부터 다양한 의견을 청취한 후 그것들을 바탕으로 건설적인 합일점을 찾아보자는 데 있다.

 

우리네 현실은 어떨까? 내 생각과 다르면 다를 뿐임에도 '틀린 것'이라고 매도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내 생각만이 옳고 내 의견에 모두가 동의해 주기만을 바라거나, 본인의 생각은 말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의견에 대뜸 반대부터 하기 시작한다. 비난을 넘어 인신공격으로 번질 때도 있다. 누군가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그런 생각도 있을 수 있구나'가 아닌 불편한 감정부터 앞세운다. 급기야 서로의 의견을 들어보자고 마련한 자리가 고성이 오가는 싸움터로 변한다.

 

어릴 때부터 주입식 학교 교육에 길들여진 까닭인지 우리 사회는 듣는 훈련이 너무나도 안 되어 있다. 모두가 자기 말만 하려 든다. 회의나 토론의 이름을 내건 상당수의 자리 역시 논의는 없고 특정인의 일방적인 방침이나 지시사항을 전달하기 위한 경우가 많다. 말이 많은 이들의 공통점은 도무지 들을 줄을 모른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말할 때 차분히 들을 생각은 않고, 언제 틈새를 치고 들어갈까에만 몰두하다 보니 상대방이 무슨 말을 했는지조차 모른다.

 

'입 때문에 망한 사람은 있어도 귀 때문에 망한 사람은 없다'고 했다. 누구든 내 말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을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런 사람과는 또 만나고 싶어진다. 내 곁에 오래도록 남는 이들 역시 결국 그런 사람들임을 시간이 지나 보면 알게 된다. 무릇 인간은 말하면서 배우기보다 들으면서 성장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보다 한 단계 더 성숙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다 함께 진지하게 돌아봐야 할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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