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본문
결혼식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문 앞에 웬 사과가 놓여 있었다. 지방 사과축제에 다녀온 처제가 맛있어 보인다며 일부러 사 와 형제들에게 한 아름씩 돌린 모양이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준다는 건 그 사람에 대한 호감의 표시이다. 그런 마음들이 지속적으로 오고 가며 인간관계도, 정도 깊어지게 마련이다. 한때 이런 풍경들은 우리네 일상이었다.
다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이따금씩 지난날의 향수가 그리워질 때가 있다. 나는 결혼 후 신혼생활을 5층짜리 아파트에서 시작했다. 우리 집은 그중 1층이었다. 문만 열면 바로 놀이터라 아이들이 뛰어놀다 목이 마르면 금세 집으로 달려와 물 한 모금 마시고는 부리나케 또 놀이터로 달려나갔다.
아파트지만 시골처럼 문을 열고 살았던 까닭에 같은 줄에 사는 이웃들은 오다가다 사랑방처럼 우리 집에 들르곤 했다. 연말이면 이웃들을 불러 우리 집에서 송년 모임을 갖기도 했다. 누군가 새로 이사를 오면 인사의 의미로 집집마다 떡을 돌리는 건 그 시절의 아름다운 풍습이었다.
지금?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는다. 누군가 낯선 사람이 문이라도 두드리면 잔뜩 경계심부터 발동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에도 무수한 이웃들이 들고나지만, 지금껏 이사 왔다며 인사를 한 경우는 없었다. 심지어 바로 앞집과도 교류가 없다. 어쩌다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도 기껏해야 목례 정도. 오늘날의 시대 분위기는 모르는 사람이 말을 붙이면 불편해하는 기색을 넘어 경계의 눈빛이 역력하다.
한때 일상이었던 5층 아파트에서의 풍경은 어느덧 옛이야기가 되어 버렸고, 나와 내 가족 위주의 세상이 된 지 오래다. 다시는 만날 수도 없고 돌아갈 수도 없는 지난 시절이 그 시대를 거쳐온 아날로그 세대에게는 종종 그리움으로 다가오지만, 세상이란 어느 한두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나마 동기 간의 정은 남아 그 시절의 향수를 대신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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