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파국을 부르는 주사酒邪 본문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이 부모든, 자식이든, 누구든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
- 공지영,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에서 -
술에 관한 한 나는 우리집에서 돌연변이다. 선친도 그랬고, 다른 형제들도 일절 술을 마시지 못한다. 안 마시는 게 아니라 태생적으로 알코올 분해가 안 되는 체질들을 타고 났다. 나도 잘 마신다기보다 그저 남들과 어울리는 정도이다. 우리 집안 자체가 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다.
술을 마시되 나대로 견지하는 규칙이 있다. 즐겁게 마시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의 화제 역시 너무 무겁거나 심각한 얘기, 또는 예민한 얘기는 피하는 편이다. 나도 그렇지만 누군가 그런 화제를 거듭해서 꺼내면 좋았던 분위기는 어느새 가라앉고 만다.
한동안 잘 지내던 사람이 있었다. 술도 가끔씩 마시고, 만나면 서로에 대해 좋은 얘기만 주고받았다. 덕담 위주로 오가다 보니 분위기는 대체로 긍정적인 편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서 전에 없던 돌출행동이 나타났다. 술잔이 오가던 중 갑자기 화가 난 표정으로 난데없이 나에 대한 인신공격을 시작한 것이다. 성격을 고치라느니, 당신은 그게 단점이라느니.. 그럴 얘기가 나올 상황도 아니었다. 충격에 한동안 연락을 끊었다. 전화도 받지 않았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는지 그가 이유를 물어왔다. 혹시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내 얘기를 듣자 정말 미안하다며 다시는 그런 일이 없을 거라고 했다. 웬걸?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같은 행동이 되풀이되었다. 급기야 다른 일행이 있는 데서 본인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내 친구나 내 형제의 신상까지 함부로 거론했다. 처음으로 그에 대한 경계심이 발동하기 시작했다.
행동은 갈수록 과격해졌다. 제지를 해도 멈출 기미가 없고, 맞대응을 하자니 큰 싸움이 벌어질 것 같아 도중에 자리를 박차고 나온 적도 있었다. 술 취한 사람과 논쟁해 봤자 부질없는 일이란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본인은 주사酒邪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그건 술만 마시면 자신도 모르게 발현되는 분명한 주사였다. 그와 가진 몇 차례의 만남이 마치 판박이처럼 똑같은 상황의 연속이었다. 이전부터 갖고 있던 버릇이었음에도 내 앞에서만 나타나지 않은 건지, 없던 주사가 뒤늦게 생긴 것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나는 주사가 있는 사람과는 의식적으로 술자리를 같이하지 않는다. 비슷한 성벽을 가진 이들을 여러 번 경험하면서 그 말로가 어떠한지를 익히 보아왔기 때문이다. 즐거워야 할 술자리가 그들로 인해 늘 엉망이 되곤 했었다. 거듭된 그의 사고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기다려 준 건 그동안 함께해 온 시간 때문이었다. 마침내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사가 무서운 건 정작 당사자는 자신에게 그런 버릇이 있다는 사실조차, 그로 인한 폐해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전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본인에게 아무리 훌륭한 장점이나 긍정적인 면이 있다 한들 주사 하나로 다른 모든 게 묻히고 만다는 점이다. 유일한 해법은 술을 끊는 것인데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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