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고마해라 ~ 마이 들었다 아이가 ~ 본문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직업 중 가장 어려운 업종이 뭘까? 그중 하나가 코미디언이 아닐까 싶다. 남들을 웃게 하는 게 일이다 보니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발굴해야 한다. 듣는 사람은 좋을지 모르지만 당사자는 얼마나 고달플까? 사람들은 아무리 재미있는 이야기도 한 번 들은 내용에는 좀처럼 웃지 않는다. 그럴 때 당사자는 공포에 사로잡힌다. 직업인으로서 존재감을 상실하기 때문이다. 가수야 같은 노래를 아무리 반복해서 불러도 반응이 뜨겁지만, 코미디는 일회성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일반인이라고 크게 다를까?
나는 태생적으로 가만히 정체되어 있는 삶이 싫다. 몸도 지속적으로 움직여야 하고, 새로운 지식 탐구도 끊임없이 해야 비로소 살아있는 느낌을 받는다. 탐구라고 해서 학자처럼 무슨 대단한 전문 분야를 추구하는 것도 아니다. 깊이 들어가 본들 감당할 능력도, 달리 써먹을 데도 없다. 그저 오늘을 사는 평범한 한 사람으로서 세상 공부에 더 가깝다. 누구를 만나더라도 화제가 풍부해야 서로 만나는 재미가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만나도 화제에 변화가 없는 이들이 있다. 작년에 봐도, 올해 봐도 똑같은 레퍼토리의 반복이다. 이미 수도 없이 들은 얘기임에도 본인은 처음인 줄 안다. '전에 들은 얘기'라며 아는 체하자니 말하는 입장에서 김이 빠질 것 같아 참는다. 무한 인내를 필요로 하지만,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 처음인 양 중간중간 맞장구도 곁들여 준다. 그렇지만 힘든 건 어쩔 수 없다. 단둘이서 만나는 관계라면 핑계 대고 안 보면 그만이지만, 여럿이 만나는 사이다 보니 그럴 수도 없다. 그럴 때면 영화 '친구'에 나오는 대사가 생각난다. '고마해라 ~ 마이 들었다 아이가 ~ '.
나는 어느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을 만나든 전문가 수준은 아닐지언정 최소한의 대화는 이어갈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은 갖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직업군을 가려 가며 만나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필연적으로 대화가 수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서로 말이 없어도 불편하지 않은 관계는 연인이나 가족밖에 없다. 나머지 인간관계에서는 침묵이 오래 이어지면 어색할 뿐만 아니라, 괜한 오해를 낳기까지 한다. '내가 불편한가', 혹은 '나에 대해 감정이 안 좋은가'라며 혼자서 온갖 상상에 사로잡힌다. 그런 분위기가 지속되면 서로에 대한 기대치는 떨어지고, 관계 또한 시들해지고 만다.
나와 정기적으로 만남을 이어가는 어떤 이는 볼 때마다 매번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보자기 한가득 담아 나온다. 명분은 '밥이나 같이 먹자'지만, 핵심은 '만나서 대화 좀 하자'이다. 그가 얘기하면 내가 추임새를 넣거나 궁금한 걸 물어보고, 그 또한 내가 얘기할 때면 같은 반응을 보여준다. 그러다 보면 서너 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간다. 대화는 내가 하는 말도 중요하지만, 그에 대해 상대방의 적절한 맞장구가 물 흐르듯 어우러질 때 보다 강한 생명력을 갖는다. 그런 사람과는 또 만나고 싶어진다. 그러자면 평소 다양한 화제를 갖추는 훈련이 필수적이며, 그런 노력은 코미디언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대받지 않은 손님 (4) | 2024.11.21 |
---|---|
파국을 부르는 주사酒邪 (4) | 2024.11.19 |
마음은 언제나 청춘 (4) | 2024.11.16 |
내가 생각하는 천재 (5) | 2024.11.15 |
칭찬의 힘 (4) | 2024.11.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