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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가면 - 서울 청량리역 (feat. 배추전) 본문
서울에는 오래전부터 'OO리'로 불리는 동네가 몇 군데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한동안 낙후된 지역의 상징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이후 대대적인 재개발 바람이 일면서 그 지역은 대부분 상전벽해로 거듭났다. 청량리도 그중 하나다. 여기는 오랫동안 본래의 이름 대신 '588'이라는 불편한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기도 했다. 오랜만에 청량리역을 찾았다.
대학 시절 청량리역은 대성리, 가평, 춘천 등으로 MT를 떠날 때면 종종 들르던 곳이었다. 그쪽 방면으로 향하는 기차는 모두 이곳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청량리역을 찾은 건 어느 해 여름 같은 중학교에서 교생 실습을 마친 동기생들과 소양호 방면으로 야유회를 떠났을 때였다. 취사도구까지 챙겨 청평사 부근 어딘가에서 함께 밥을 해먹었던 기억이 있다(요즘과 달리 그때는 그런 풍경이 일반적이었다).
당시 허름한 단층 건물이었던 역사는 2010년 들어 지금의 웅장하고 현대적인 민자 역사로 거듭났다. 서울역이 중부 이남 지역으로 향하는 노선의 시발점이라고 한다면, 청량리역은 가평, 춘천(경춘선)이나 강릉, 동해(강릉선), 또는 원주, 안동 지역(중앙선)으로 향하는 노선의 시발점이라고 보면 되겠다.
사실 이날 내가 청량리역을 찾은 주 목적은 따로 있었다. 재작년 가을 무렵 경동시장 내 어느 식당(안동집)에서 서울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든 배추전을 먹고 감동한 뒤, 오랜만에 그 배추전이 생각나 다시 찾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근 그곳이 '흑백 요리사'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전국적인 유명세를 타면서 하염없이 줄을 서야 한다는 얘기를 듣고는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나는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줄 서는 걸 몹시 싫어한다).
그래서 대안으로 찾아본 것이 청량리역 인근에 있는 '경북 손칼국수'라는 곳이었다. 마침 이곳에서도 배추전을 하고 있다고 했다. 잠시 글의 흐름을 이탈해서 내가 왜 배추전에 이토록 마음을 뺏기는지를 잠시 설명할 필요가 있겠다. 다른 지방과 달리 내가 나고 자란 고장에서는 배추를 재료로 한 전을 자주 먹는다. 성장기에 어머니가 해주시던 배추전을 오랫동안 먹고 자라다 보니 나이가 들어도 그것만큼 맛있는 전이 없다. 집에서 직접 해먹을 수는 있지만 밖에서 사 먹는 재미도 쏠쏠한데, 안타깝게도 서울에서는 이 음식을 파는 곳이 잘 없다. 어렵게 찾은 곳이 앞서 얘기한 경동시장 내 '안동집'과, 이번에 새로이 알게 된 청량리 '경북 손칼국수' 단 두 곳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맞이한 청량리 표 배추전. 맛이 어땠을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내 기대에는 많이 미치지 못했다. 자연스럽게 경동시장 '안동집'의 그것과 비교를 할 수밖에. 우선 가격 면에 있어 안동집은 8천 원, 청량리는 5천 원. 안동집은 가격에 걸맞게 좀 더 푸짐한 반면, 청량리는 그보다는 약했다. 그건 이미 감안한 요소였고, 중요한 건 맛이었다. 배추전은 너무 두껍지 않은 밀가루 옷에 바삭함이 생명인데, 안동집은 우수한 반면, 청량리는 바삭함은 없고 흥건함이 느껴질 만큼 기름기가 많았다. 같이 먹은 칼국수는 안동집이나 청량리나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결국 내가 좋아하는 배추전을 먹기 위해서는 불편한 기다림을 감수하고라도 경동시장을 다시 찾는 것 외에는 달리 방법이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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