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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

자유인。 2025. 2. 4. 04:07

 

 

흔히 맛있는 음식을 보면 '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란 표현들을 종종 하곤 한다. 이는 성장기에 함께했던 음식이면서 추억이 깃든 음식이란 의미를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그 이면을 살펴보면 실제로 할머니들이 직접 손주들에게 음식을 만들어 준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적은 없어도 일종의 형용사적 의미로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나의 친할머니는 일찍 남편을 여의고 홀로 두 아들을 키웠다. 아버지와 큰아버지는 출가 후 한 동네에서 이웃하며 살았는데, 할머니는 맏이인 큰아버지 댁에서 사셨다. 이전에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내가 태어난 이후에는 그녀가 부엌에 들어가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어쩌다 며느리들이 하는 일을 옆에서 보조하는 경우(나물 다듬기 같은)는 더러 있었어도, 당신이 나서서 직접 음식을 만드는 건 보지 못했다.

 

그녀의 유이한 낙은 책 읽기(당시 칠순이 넘었는데도 심청전이나 춘향전 같은 책을 소리 내어 즐겨 읽으셨다)와 내 바로 위 누이와 이따금씩 육백(화투 놀이의 일종)을 즐기는 것이었다. 그런데 밖에서 일을 하고 있던 큰어머니는 시어머니의 그런 모습이 보기 싫었던지, 그때마다 '또 화투냐'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 할머니와 누이는 황급히 화투를 접고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가야 했다. 누이는 그런 큰어머니를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이후에도 '감시병'이 없는 틈을 이용해 종종 할머니의 유일한 화투 친구가 되어 주곤 했다( 누이는 어릴 때부터 그런 기질이 있었는지, 나이 든 지금도 노인들을 보필하는 일을 하고 있다). 

 

외할머니 역시 농사짓는 막내딸인 어머니가 몇 년을 모셨지만, 나와 함께 있는 동안 부엌에 들어가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녀의 하루 일과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종일 마루에 앉아 밖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하릴없이 지켜보는 것이었다. 벽에 걸린 시계가 정각이나 30분마다 땡땡거리며 소리를 울릴 때면 '벌써 1시다, 벌써 두 시다'라는 말을 반복적으로 읊조렸다. 남달리 냉수를 자주 드셨는데, 그럴 때마다 손자인 나에게 물을 떠오라는 주문을 하곤 하셨다.

 

이것들이 할머니나 외할머니에게서 떠올릴 수 있는 내 기억의 전부다. 따라서 '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란 말을 나로선 할 수가 없다. 다만 '어머니가 해주시던 음식'이란 표현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요즘처럼 정해진 조리법이 있는 것도 아니었는데, 그녀의 음식 솜씨는 어린 내가 보기에도 남달랐다. 그냥 '장난처럼' 뚝딱 만드는 것 같은데도 막상 먹어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중에서도 토란에다 각종 재료를 듬뿍 넣어 끓여 주시던 그녀의 맛있는 닭개장이 무척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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