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그곳에 가면 - 경기 시흥 들녘 본문
경기도 시흥에서 얼마간 산 적이 있었다. 그곳으로 이사를 가기 전까지 서울에만 시흥동이 있는 줄 알았지, 경기도에도 같은 이름의 도시가 있다는 건 전혀 알지 못했다. 수도권이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자연과 더불어 살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좋았지만, 도시 환경에서만 나고 자란 아내와 아이들은 불만이었다. 결국 상급학교 진학을 앞둔 아이들의 교육 문제로 얼마 있지 않아 빠져나오긴 했지만, 그 덕분에 나로서는 현지에 살아보지 않았더라면 영영 모르고 살았을 나만의 '비밀의 화원'을 하나 갖게 되었다.
떠나온 지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해마다 봄이 기지개를 켜기 시작하는 이맘때면 어김없이 카메라를 메고 그곳을 찾곤 한다. 한창 사진에 재미를 붙일 당시 여기에서 찍은 작품으로 공모전에서 입선을 하기도 했고, 풍경 사진을 어떻게 찍어야 하는지도 이곳에서의 숱한 현장 실습을 거듭하며 하나씩 배워나갈 수 있었다.

초등학교 땐가 중학교 수업 시간에 산개散開 도시라고 배운 적이 있었다. 도시가 한곳에 모여 있지 않고 여러 곳으로 흩어져 있다는 뜻이다. 도시란 대개 어느 한 지점을 중심으로 원형을 이루는 것이 일반적인데, 경기도 시흥시는 안산 쪽에 한 덩어리가 있고, 반대편인 부천 쪽에 또 하나가, 그리고 시흥 시청이 위치하고 있는 중간 지점에 또 다른 하나가 있다. 도시 형태를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만들었는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인근에 있는 경기도 의왕시 또한 이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관리의 효율성 면에서 보면 어느 한곳으로 각각 통합하는 것이 맞을 듯한데, 거기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복잡한 정치적 배경이 깔려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여기는 제방을 따라 이어진 길로 본래 농사짓는 이들을 위한 농로인데, 도시와 농촌의 삶이 한데 어우러지다 보니 인근에 살고 있는 아파트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도 널리 애용되고 있다. 주말이면 자전거 동호인들의 라이딩 코스로도 인기다. 무엇보다 계절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자연 풍경이 매력적인 곳이다.

내가 좋아하는 피사체는 초록이 무성해지기 전 무리를 지어 달리는 자전거 동호인들의 모습을 멀리서 망원렌즈로 담는 것이다. 벼와 풀이 자라고 나뭇잎이 무성해지면 내가 담고자 하는 피사체의 핵심이 다른 물체에 묻히고 말기 때문이다. 종종 허탕을 치고 돌아올 때도 있지만, 오랫동안 반복해서 다니다 보니 언제쯤 그들이 등장하는지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해졌다.

사진은 뺄셈의 예술이자 기다림의 예술이다. 욕심이 지나쳐 이것저것 다 넣게 되면 사진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요점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과감히 버리고 핵심만을 남겨야 한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피사체가 등장할 때까지 한없는 기다림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마음이 급하고 쫓기면 어떤 것도 제대로 담을 수가 없다.

사진은 단순히 찍는 게 다가 아니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시선으로 어떤 대상을, 어떤 각도와 구도로, 어떻게 담아내느냐가 더 중요하다. 사진 한 장을 보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찍은 사람의 마음과 심리 상태가 그대로 드러난다.
특별한 종교가 없는 나로서는 뒤늦게 만난 사진과 글쓰기가 나만의 종교나 다름없다. 그것들을 통해 삶의 위로와 마음의 평안을 얻기 때문이다. 처음 그것들과 인연을 맺게 된 시발점이 바로 여기 시흥 들녘이었다. 평생 운동이라고는 모르고 살았던 내가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던 마라톤의 불을 지핀 곳이 이곳이요, 그것을 통해 글쓰기를 알게 되었고, 글쓰기가 마중물이 되어 사진이란 또 다른 평생의 친구를 만나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내 인생의 방향과 색깔은 확연히 달라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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