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우리네 인생은 본문

처가 식구들과 강원도 홍천에 다녀왔다. 꽉 막힌 도시에서만 살다가 모처럼 자연의 교향악이 울려 퍼지는 교외로 나가면, 그 자체만으로 치유의 효과는 넘치고도 남는다. 필요한 말 이외에는 별다른 대화가 없는 나의 본가와는 달리, 처가 형제들은 '저런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해야 할까' 싶을 정도로 서로의 사소한 일상을 주고받는다. 대화가 많은 만큼 우애도 좋은 편이다.
대체로 아들 많은 집안보다는 딸 많은 집안이 관계가 원만한 건 왜일까? 남성 위주의 사회였던 과거와는 달리 현대에 이르러서는 여성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강해졌다. 적어도 가정 내에서는. 가족 간 관계 형성에 여성들이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오랫동안 성장기를 함께 해온 자매들과는 달리, 전혀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며느리들끼리는 서로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자매끼리는 다투다가도 금세 원상 회복이 가능하지만, 동서 사이에 그런 일이 있으면 관계 회복은커녕 아예 등을 돌리거나 영영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되는 경우도 없지 않다.
흔히 사위를 아들처럼, 며느리를 딸처럼 여긴다는 말을 하곤 한다. 나는 그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갈등은 바로 거기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사위는 아들이 될 수 없고, 며느리는 딸이 될 수 없음에도, 서로에 대한 비현실적인 기대치를 과도하게 갖다 보니 서운함도 그에 비례하여 커질 수밖에. 사위는 사위이고, 며느리는 며느리일 뿐이다. 애초부터 그렇게 관계를 설정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가정의 평화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다.
나 또한 사위나 며느리에게 별다른 기대치를 갖지 않는다. 무관심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들의 삶을 존중하겠다는 뜻이다. 내가 낳고 기른 자식들이지만 출가한 이상, 그들의 가정은 부모라고 해서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그들만의 치외 법권 지역이기 때문이다. 어른이라는 이유로 자신들의 생각을 일방적으로 강요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른 건 다를 뿐, 틀린 것이 아님에도, 본인과 생각이 다르면 틀리다고 매도하기 일쑤였다.
모든 인간관계의 갈등은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려고 할 때 시작된다. 내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면, 상대 또한 나를 배려하고 존중해 주지만, 내가 상대를 무시하면, 상대방 역시 똑같이 나를 무시할 수밖에 없다. 자신은 배려와 존중을 모르면서, 상대가 나를 존중해 주지 않는다고 탓할 것도 없다. 뿌린 대로 거두는 것이 인생이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이 다 나를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건 아니듯, 나 또한 모든 사람을 다 좋아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아닌 인연에 억지로 매달려 서로의 가슴에 생채기를 내어가며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기보다는, 나와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대상을 한 명이라도 가까이 둘 수 있다면 남은 인생길이 좀 더 순탄하지 않을까? 사랑만 하며 살기에도 우리네 인생은 턱없이 짧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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