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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히 쉬라'는 말

자유인。 2025. 6. 12. 05:00

 

 

'너희의 젊음이 노력해서 얻은 상이 아니듯,

나의 늙음도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 박범신 소설, <은교> 중에서 -

 

 

인간은 누구나 세월이 가면 늙는다. 빠르고 늦고의 차이만 있을 뿐, 누구든 마지막 순간을 맞이한다.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다. 자신도 예외 없이 늙어간다는 것, 때가 되면 언젠가는 떠나야 한다는 사실을 조금이라도 일찍 자각하고 인정하는 순간, 삶은 서글퍼지는 것이 아닌, 오히려 더 열심히 살 수 있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나이가 들수록 가만히 있는 것보다 적당한 노동이나 움직임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더 도움이 된다고 한다. 부모가 나이가 들면 자식들이 흔히 하는 말. 이제 일은 그만하고 편히 쉬시라고. 그런데 그들이 얘기하는 '편히 쉬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저 하늘에 비행기 지나가는 거나 보고, 시계 초침 움직이는 거나 앉아서 쳐다보고 있으라는 말인가?

 

그건 자식들이 몰라도 너무 몰라서 하는 소리다. 나이가 들수록 일이 필요하다. 한창 젊을 때야 혈기도 왕성하고 매달린 생업이 있으니 모르겠지만, 나이가 들면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세상 전면에서 서서히 밀려나게 된다.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때 찾아오는 건 무료함과 외로움. 무언가 몰입할 대상이 없으면 육체와 더불어 정신 또한 급격히 늙어간다. 그런 때일수록 소일거리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돈벌이를 위한 것이든, 취미 활동이건, 아니면 봉사가 되었건 정신을 쏟을 만한 어떤 대상이 있을 때 정신 건강도 비로소 유지할 수 있다.

 

퇴직을 하고 난 뒤 아내가 그랬다. 이제 당신 일 안 해도 된다고. 남은 세월은 자신이 먹여 살릴 거라고. 만약 그때 그녀 말만 믿고 지금껏 하는 일 없이 무위도식으로 일관했다면 내 삶의 질은 말할 수 없이 하락했을 것이다. 부부라고 해서 배우자의 삶까지 대신 살아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식들 역시 나이 든 부모에게 '편히 쉬시라'고 하기 전에 뭐라도 할 일을 찾아주는 것이 보다 진정한 효도임을 잊지 말 일이다.

 

자고 나면 어딘가 나갈 데가 있다는 건, 무언가 할 일이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여름의 길목으로 접어드는 6월 중순의 어느 날 아침, 일터에서 한바탕 비 오듯 땀을 흘리고 난 뒤 불현듯 스치는 단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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