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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인연

자유인。 2023. 5. 14. 07:11

 
나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을 잘 하지 않는다.
웬만하면 스스로 해결을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지금까지 그런 생각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럼에도 살다 보면 누군가에게 부탁을 하거나 신세를 져야 할 때가 있다.
그런 일이 있을 때면 상황이 종료된 후 나만의 방법으로 꼭 감사의 인사를 전하곤 한다.
상대방이 요구하지는 않지만, 그러지 않으면 내 마음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내가 누군가의 부탁을 들어주어야 할 때도 있다.
대체로 사람들은 아쉬울 땐 뭐든지 다 해줄 것처럼 말하다가, 끝나고 나면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면 모르고 살았던 상대방의 내면을 다시금 들여다보기도 한다.

업무적으로 만나 인간적으로 가까워진 사람이 있다.
그는 나에게 부탁하는 입장이었고, 나는 들어주는 쪽이었다.
나로선 때마침 기회가 닿아 그렇게 할 수 있었고, 그런 인연이 20년 가까이나 이어졌다.

서로 간 업무적인 관계는 끝이 났지만, 이후에도 그는 여전히 나를 잊지 않고 있다.
생각만으로 그치지 않고, 잊을 만하면 안부를 물으며 밥까지 사고 있다.
더 이상 그렇게까지 안 해도 누가 뭐라 할 사람 없지만, 그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다.
매번 신세만 지는 것이 미안해, 내가 한번쯤은 사려 해도 기어이 막아선다.

그는 말한다.
'내가 가장 절박할 때 O 박사(나는 박사가 아니지만, 그는 나를 이렇게 부른다)가
나를 얼마나 물심양면으로 도와줬는데, 어찌 O 박사를 잊을 수 있겠느냐'고.
말 따로, 행동 따로인 경우가 많은 세상에서, 그는 드물게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서로가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면 서너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그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는 속내를 나에게만은 가감없이 털어놓는다.
나에게는 까마득한 인생 선배인데도, 만나면 우리는 '친구'가 된다.

그는 나를 만나 행운이라 말하지만, 혹시 그는 알고 있을까.
나로선 감히 흉내조차 낼 수 없는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를 내 인생의 동반자로
만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내가 오히려 감사하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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