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화장실에서 만난 예술 본문
가수 현철이 부른 노래 중에 '추억의 테헤란로'란 곡이 있다.
'피우지 못한 그 사랑의 꽃잎을 접어둔 채로 ~ 비 오던 밤에 우리는 서로 눈물로 헤어진 뒤 ~
그리움과 외로움이 그 여인을 생각케 하면 ~ 오늘도 터벅터벅 홀로 걷는 테헤란로 ~
아 ~ ~ 추억의 테헤란로 ~ '
가사에 등장하는 테헤란로는 서울 강남역에서 삼성교(잠실종합운동장 직전)에
이르는 약 4km의 구간으로, 1977년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과 이란의 수도인 테헤란시가
서로 자매결연 맺은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그에 따라 서울에는 테헤란로가,
테헤란에는 서울로가 각각 조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내가 근무했던 사무실은 바로 그 테헤란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인생의 반이 넘는 기간을 그곳에서 보냈으니 개인적으로 남다른 추억이 서린 곳이기도 하다.
내가 일하던 사무실은 직원들의 자동차 수에 비해 주차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여 이웃해 있는 다른 대형 건물의 주차장을 일부 임차해서 쓰고 있었다.
인간이 생존하는 데 있어 가장 필수적인 세 가지는 먹고, 배설하고, 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중 어느 한 가지만 문제가 생겨도 정상적인 삶을 유지하기 어렵다.
매일 아침 출근하면 불편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다름 아닌 화장실 문제였다. 고위직이었던 나로서는 한참이나 차이가
벌어지는 후배 직원들과 같이 화장실을 쓴다는 것이 왠지 달갑지가 않았고,
그들 역시 내가 있으면 불편함을 넘어 어려워하기까지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특별히 시간에 쫓기는 경우가 아니면 잠시 숨도 돌릴 겸,
주차장이 있는 이웃 건물의 화장실을 이용하곤 했었다.
내가 나를 위해, 혹은 후배들을 위해 할 수 있는 배려 아닌 배려였던 셈이다.
어느 날 화장실에 앉아 '업무'를 보던 중 바닥에 신기한 것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마치 학교에서 배웠던 알타미라 동굴 벽화를 연상케하는 것이었다.
어찌 보면 사람의 얼굴 같기도 하고, 또 어찌 보면 동물의 형상 같기도 한,
어느 걸출한 예술가인들 그 정도 표현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그것은 바로 좁은 화장실 공간을 넓히기 위해 문이 있던
자리를 바깥으로 위치를 옮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생겨난 것이었다.
쇠가 박혀 녹이 슨 부분은 눈이 되었고, 시멘트를 덧칠한 곳은 머리와 코와 구레나룻으로,
타일이 깨진 부분은 각각 입이 되어 생각지도 못한 예술 작품이 탄생한 것이다.
그 당시 공사를 담당했던 이들은 알았을까?
자신들의 손에 의해 '역사에 길이 빛날' 희대의 걸작 하나가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나 이외 같은 자리에서 업무를 보았던 다른 이들은 알았을까?
피카소도 울고 갈 신비한 예술의 세계가 자신들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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