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그곳에 가면 - 서울 남산공원 본문
내가 난생처음 서울 구경을 한 건 초등학교 5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조선호텔에서 열린 이종 형님의 결혼식 참석을 위해 아버지를 따라갔던 길이었다.
내가 살던 고향에서는 서울 가는 기차가 없어 김천역까지 버스로 이동한 후
거기에서 다시 서울행 기차를 타야만 했다. 당시에는 '특급열차'로 불리었는데,
지금은 사라진 통일호 열차가 바로 그것이었다.
외국 가는 비행기를 처음 탈 때가 그런 기분이었을까. 가기 전에도,
기차를 타고 나서도, 서울에 도착해서도 내내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 서울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이들은 '출세'의 상징이자
더없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만큼 서울 나들이가 어려운 시절이었다.
교통 신호등을 본 것도, 양변기를 구경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고,
시내버스란 걸 타 본 것도, 우유를 맛본 것도, 일부 부유층만이 즐기던 바나나를
먹어본 것도 그때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살다 보니 어느덧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아득한 옛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서두가 길어진 건 서울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서울의 중심에는 남산이 있다. 조선시대 한양 시절부터 600년이 훨씬
넘도록 한 나라의 수도로 존재해 왔으니 그 안에 켜켜이 쌓인 사연이 얼마나
많고 많으랴. 남산은 그 오랜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왔고, 간직하고 있다
(옛 이름은 목멱산이었다).
서울에 살면서도 남산을 올라가 보지 못한 이들이 의외로 많다.
나 또한 학생 때는 생각도 못 하다가 나이가 들고 나서야 비로소 처음으로 올랐다.
등잔 밑이 어둡고, 가까이 있는 건 소홀하기 쉽다는 것도 다 그런 연유에서
나온 얘기인지 모른다. 지방 사는 이들이 서울 올라오면 다른 데보다
남산공원을 잊지 말고 꼭 한 번 올라가 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리 높지 않아 쉬엄쉬엄 올라도 되고, 걷는 게 불편하다면
케이블카를 이용하면 된다(왕복 15,000원). 정상에서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서울 전경을 보고 나면 어디에도 비할 바 없는 뿌듯함이 생겨난다.
명동과 더불어 서울에서 외국인 관광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앉아 있으면 한국인지 유럽 어디쯤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이다.
정상 부근 곳곳에는 영원한 사랑을 맹세한 연인들의 풀 수 없는
자물쇠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행여 철제 난간이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무너지는 사태가 발생하지는 않을까 걱정될 정도이다. 지금쯤 자물쇠의
주인공들은 그때의 맹세를 충실히들 잘 지켜가고 있을까.
오랜만에 다시 찾은 남산공원. 전날 밤늦게까지 비가 내렸음에도
정상에서 내려다본 서울은 아침부터 자욱한 황사가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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