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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갈 수 없는 길

자유인。 2024. 7. 26. 05:11

 

 

 

'어두운 비 내려오면 ~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 있네 ~

그 맑은 두 눈에 빗물 고이면 ~ 음 ~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어라 ~ '

- 김민기의 노래 '아름다운 사람' 중에서 -

 

 

내가 그의 노래를 처음 들은 건 시골에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다.

당시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형님이 방학을 맞아 고향 집에 내려오며 가지고 온 

일제 소니 녹음기를 통해서였다. 낙후된 농촌 환경에서 선진 문물을 접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는 극장밖에는 없던 시절이었다. 묵직한 저음에 실려 흘러나오던

그의 노래는 어린 내 귀에도 남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그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그가 만든 노래들도 조금씩 익숙해졌다.

 

사람은 누구든 세상에 태어나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싶어 한다.

가능하면 무대 전면에 나서 자신의 존재감을 조금이라도 더 뽐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는 한평생 무대 뒤에서 사람들의 주목과는 거리가 먼 '뒷것'으로만 살아왔다.

그럼에도 그의 존재감은 다른 어느 '앞것'들보다 앞섰다.

 

일찍이 우리나라 문화 예술계에서 막후의 인물로서 그처럼 큰 울림과 영향력을 가진 이는 없었다.

전면에 나서지 않고도 얼마든지 존재감을 지닐 수 있음을 그는 몸소 증명해 보였다.

그가 만든 노래는 이 나라의 중대한 국면 전환이 요구될 때마다 광장에서 광장으로 울려 퍼졌다.

 

한평생 인기와 영합하지 않으면서, 한평생 돈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아오면서도

그는 흙 속에 묻힌 수많은 진주들을 발굴하고 조련해 세상이 알아주는 스타로 키워냈다.

자신이 빛나기를 거부하고, 오로지 무대 뒤에서 다른 이들이 빛나게 하는 역할만을 도맡았다.

 

무릇 한 사람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는 그가 떠난 뒤에 비로소 알게 된다고 한다.

상호 연관성도 없는 다양한 분야의 인사들이 그의 마지막 길을 진한 눈물로

배웅하는 모습을 보며, 아무나 갈 수 없는 길을 걸어온 인물이었음을 새삼 확인하게 된다.

 

'마지막 노잣돈은 충분히 마련해 두었으니 일체의 화환과 조의금은 정중히 사절한다'

- 그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부탁이었다.

 

 

*앞것 : 무대의 주인공인 배우를 일컫는 고인의 말

*뒷것 : 무대 뒤에서 일하는 스태프를 일컫는 고인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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