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달빛 어린이 병원 본문
사위가 모임이 있어 늦다며 딸이 퇴근길에 손녀와 함께 친정에 들러 저녁을 먹겠노라고 했다.
지난 3월부터 직장 어린이집 등원을 시작한 손녀는 적응기를 거쳐 지금은 새로운
환경에 완전히 정착을 했다. 하루하루 커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그 느낌을 뭐라 표현할 길 없다.
내 아이들 키울 때는 미처 몰랐던 재미를 손녀를 통해 비로소 알아가는 요즘이다.
집에 들렀을 때까지만 해도 잘 놀던 녀석이 저녁을 먹다 말고 명치 쪽을 가리키며 아프다는 시늉을 한다.
어린이집 세면대에 약간 부딪혔다는 교사의 설명이 있었다는데,
담당 간호사 말로는 특별한 이상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식사 후 목욕을 하고 나서부터 갑자기 같은 쪽을 가리키며 울기 시작한다.
울음소리는 갈수록 커졌고 도무지 그칠 기미가 없다.
무언가 불편한 듯한데 말을 할 줄 모르니 참으로 난감하다.
시간은 어느덧 밤 10시가 가까웠고, 그 시각 진료 병원을 알아보니 몇몇 군데가
있긴 하지만 가기엔 너무 멀고, 마침 딸이 사는 집 근처에 평소 다니던 병원이 문을 열고
있어 서둘러 찾았다. 진료 결과 다행히 별 이상은 없다고 해서 한시름 놓았다.
녀석 역시 신기하게도 진료실 문을 나서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기를 되찾았다.
병원 문을 나서며 딸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된 '달빛 어린이 병원' 제도.
처음에는 특정 병원 이름인 줄 알았다. 야간이나 휴일에 갑자기 아기들이 아프면
부모들은 적잖이 당황한다. 그럴 때를 대비해 정부에서 일부 병원을 지정하여
야간이나 공휴일에도 진료를 할 수 있게 만든 제도라고 한다.
이용 시간은 평일(18:00~24:00)과 토요일(15:00~24:00), 일요일(09:00~22:00)이 조금씩 다른데,
아기들이 주로 비상이 걸리는 시점인 야간 진료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진료비는 일부 가산료가 있기는 하지만 크게 비싸지 않고, 응급실보다는 저렴한 편이다.
몇 년 전부터 소아청소년과는 의사들의 기피 현상이 심각하다.
서울 수도권은 그나마 덜하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면 거의 붕괴 직전이라고 한다.
어른과 달리 아기들은 말을 할 줄 모르니 의사들로서는
원인을 찾기 위해 해야 할 일이 다른 과목에 비해 몇 배나 많다.
거기에 필수적으로 동반되는 부모들까지 상대해야 하니 부담은 더욱 가중된다.
그렇다고 특별히 의료 수가가 높은 것도 아니다.
병원도 일종의 수익사업인데 노동량은 많고 수익은 받쳐주질 못하니 전혀 이해가 안 가는 바도 아니다.
내가 사는 동네 한 이비인후과는 진료 시간이 길어야 3분으로 하루 종일 환자가 끊일 줄 모른다.
의사를 넘어 경영자로서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연초부터 시작된 의대 증원 문제는 언제 접점을 찾을지 기약이 없다.
한편으로 보면 의사들의 지나친 자기 밥그릇 챙기기란 생각이 들다가도,
의료계 종사자들의 말을 들어 보면 전혀가 일리가 없는 것도 아니다. 갈수록 인구가 줄고 있는
마당에 현재 정원(약 3천 명)도 많은데, 거기에 다시 2천 명을 추가하면 교육 기반도
채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어떻게 감당한단 말이냐, 그것도 서울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에만
증원한다고 하는데, 그들이 졸업하고 나면 정부의 바람대로 지방에서만 개업한다는
보장이 있느냐 등이 의료계에서 반대하는 주된 이유라고 전해진다.
그런 와중에 소비자들 입장에서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일부 종합병원을
제외한 동네 병원은 대부분 정상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무거운
수술을 앞둔 환자나 가족들로서는 입장이 또 다를 수밖에. 정부는 결정을 했고,
의료계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계속해서 반발하고 있다. 위험하기 이를 데 없는
양자의 치킨 게임은 어떻게 결말이 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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