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도시락에 관한 추억 본문
아마 초등학교 2, 3학년 무렵이었을 것이다.
그날이 수업이 끝난 후 분단마다 돌아가며 맡는 교실 청소 당번이었던 것 같다.
청소를 다 마치고 집에 가려는데 담임 선생님을 포함한 같은 학년 선생님
몇 분이서 교실 뒤 자리에 앉아 학교 인근 식당에서 배달 시킨 라면을 들고 계셨다.
더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라면을 후룩후룩 소리를 내며 드시는데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모른다(집에 손님이 오면 라면을 대접하던 시절이었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는 학교까지 자전거를 타고 통학을 했었다.
오후 수업까지 있던 때여서 매일같이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만 했다.
요즘처럼 제대로 된 용기가 없어 보온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꿨고,
반찬통 역시 밀폐 기능이 없다 보니 김치처럼 수분이 있는 반찬을 넣으면
방향을 아무리 바로잡은들 흔들릴 때마다 국물이 그대로 밖으로
새어 나오곤 했다.
도시락은 책가방에 넣어 자전거 짐받이에 묶거나 손잡이에 걸고
다녔었는데, 학교에 도착해서 가방을 열어 보면 반찬 국물이 죄다 교과서와
공책에 쏟아져 난감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나만 그랬던 게
아니고 다른 아이들 역시 다 마찬가지였다. 그때는 그런 시절이었다.
형편이 어려워 도시락조차 못 싸오는 아이들도 적지 않았다.
세월은 흘러 모든 것이 풍족하다 못해 차고 넘치는 세상이 되었다.
일부러 환경을 선택해서 태어날 수는 없지만, 어려운 시절을 경험하고 나면
지금 누리는 것들이 당연한 게 아니란걸, 그것들에 대한 고마움이란 걸 알게 된다.
당시에는 하루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환경이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것들이 모두 오늘의 나를 키운 다시없는 자양분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더위를 피해 찾은 계곡 물가에 앉아 그때와는 감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고급화된 도시락을 먹다 보니 잊고 있던 지난 시절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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