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내일이면 늦으리 본문

글쓰기

내일이면 늦으리

자유인。 2024. 8. 28. 05:34

 

 

이따금씩 보게 되는 방송에서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 중 하나는 타인들의 삶을

제3자의 시각으로 관찰하는 내용이다. 나와 다른 그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새롭게

깨닫기도 하고 나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내가 운영하는 블로그의 큰 틀 역시

세상살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은 방송에서 볼 수 없는 한 연기자의 이야기가 등장했다.

올해 여든에 접어든 그는 한때 사극에서 독보적인 연기력으로 맹활약했던 인물이다.

문외한이었던 내가 봐도 당시 극 중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단연 돋보였다.

 

그는 또 다른 이력으로도 유명한 인물이었다. 연기자들은 배역에 따라 수입이

들쭉날쭉하다 보니 별도의 안정적인 경제 기반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그는 90년대 초부터 여의도에서 유명한 고깃집을 운영했는데, 성공적인 외식사업가로

사례 연구 대상이 될 만큼 그의 영업장은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개인적으로도

몇 번 들렀던 곳인데, 주인장인 그가 앞치마 차림으로 직접 손님 테이블을 일일이

돌아다니며 인사를 하고 서빙도 하던 기억이 선명하다.

 

8년 전 그의 부인이 신병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식당 사업으로

남부럽지 않을 만큼 돈을 벌었음에도 매월 그는 부인에게 일정 금액의 생활비만 주면서,

정해진 한도를 넘어서면 씀씀이가 헤프다며 심하게 다그쳤다고 한다. 나중에 알고 보니

부인 자신이 허투루 쓴 것도 아닌, 모두 자식들의 교육비 등으로 지출된 것이었다고 한다.

그녀가 떠나고 나니 그때 자신이 왜 그리 너그럽지 못하고 옹졸했었는지 그렇게

미안하고 후회스러울 수가 없다고 한다.

 

돈을 번다는 건 결국 살아 있는 동안 경제적인 행복을 누리기 위함일진대,

활용되지 않고 숫자로만 존재하는 재산이 아무리 많은들 무슨 의미가 있을까?

참으로 지난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의 부모 세대가 그러지 않았던가.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악착같이 돈은 벌었건만, 당신들을 위해서는

한 푼을 쓸 줄 모르고, 오로지 자식들을 위해서만 살다 간 ...

 

사람이 어느 한 곳에만 지나치게 매몰되다 보면 다른 것을 보지 못한다.

아예 보이지가 않는다. 인간은 누구나 빠르고 늦고의 차이만 있을 뿐 언젠가는

떠나게 마련이다. 돈도 중요하고, 사업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바로 내 옆에 있는 가족, 그중에서도 나와 함께 긴 세월을 살아온 배우자가 아닐까?

 

지고 가지 못하는 돈.. 떠나고 나서 후회하기보다는 살아 있는 동안

누리며 살자. 나 역시 한때는 아끼는 것만이 능사인 줄 알던 시절이 있었다.

다행히 싯다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서 크게 깨달음을 얻었듯, 우연한 계기로

그게 아님을 뒤늦게 깨닫고 답답한 우물에서 가까스로 탈출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물 쓰듯이 쓰지도 못한다. 잔고의 한계 때문에..

 

하지만 '주머니 속의 행복'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짜장면 한 그릇에도

행복은 얼마든지 넘쳐난다. 마음만 있다면.. 저 산 너머 어딘가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있을 것 같아 부지런히 달려가 보지만, 막상 다가서면 신기루임을 알면서도 또 다른

무지개를 좇아 끊임없이 달려가기를 거듭하는 것이 우리네 인생인지도 모른다.

 

결국 남는 건 헛된 신기루를 좇을 그 시간에 현재에 좀 더 충실하지 못했다는

후회뿐.. 하루라도 일찍 깨달을 일이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점은 어제도,

내일도 아닌 살아 있는 바로 이 순간임을. 내일이면 이미 늦다는 것을.

 

'글쓰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4) 2024.08.30
힘을 뺀다는 것  (6) 2024.08.29
결혼식 유감  (6) 2024.08.26
알 수 없는 인간의 심리  (6) 2024.08.25
달빛 어린이 병원  (7) 2024.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