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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불러준다는 것

자유인。 2024. 8. 30. 04:44

 

 

 

나는 예전부터 사람의 이름을 잘 기억하는 편이었다.

아니, 그러기 전에 나 자신이 먼저 기억하려고 적지 않은 노력을 기울였다.

 

누구를 만나 아무런 호칭 없이 인사만 건네다 보면 쉬이 가까워지기가 어렵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이라도 되도록 이름을 불러주려 노력한다.

그럴 때면 상대방의 표정도 한결 밝아짐을 느낄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을 기억하고 인정해 준다는 것에 반색하기 마련이다.

 

어느 시점까지만 해도 몇 년이 지난 뒤 다시 만나더라도 금세 상대방의 이름이 생각나곤 했었다.

최근 들어 그런 나의 '총명함'이 시나브로 무너지고 있음을 느낀다.

 

선배 혼사가 있어 오랜만에 학교 동문들을 만났다.

한때 동창회 주요 보직을 맡고 있었던 터라 남들보다는 동문들에 관해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꽤 흘렀어도 기존에 알던 얼굴들은 대부분 이름이 생각났는데

한 선배의 이름만은 좀처럼 떠오르지가 않았다.

 

반가움에 인사까지는 했지만 이름을 모르니 호칭은 생략할 수밖에.

그렇다고 물어보자니 민망하다. 자리를 파하고 돌아오는 길에 그 선배의 이름이

불현듯 생각이 났다. 그러나 버스는 이미 떠난 뒤..

 

어떤 경우에는 처음에는 생각이 안 났다가 대화 도중 갑자기 떠오를 때도 있다.

근래 들어 이런 일이 부쩍 잦아졌다. 현실이 이런데도 내 친구들은 남의 속도 모르고

지난 일을 막힘없이 떠올리는 나를 보며 기억력이 대단하다며 부러워한다.

 

그들은 모를 것이다. 뇌세포의 활동성이 전과 같지 않음에도 상대방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 나대로는 지금도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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