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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국을 부르는 주사(酒邪)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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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에 관한 한 나는 우리 집에서 돌연변이에 가깝다.
돌아가신 선친도, 형제들도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가 안 되는 체질이어서
어쩌다 한 잔이라도 마시고 나면 이내 취침 모드에 돌입한다. 대개 술을 처음 접하는
시기가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들어갈 때쯤인데, 그 당시 친구들과 한두 잔을
마시고 나면 나 역시 후유증이 심해 술과는 인연이 없을 줄 알았다. 다행히 군대를
다녀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조금씩 내성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남들과
어울릴 정도는 된다.
술에 관한 나의 신조는 기분 좋게 마셔야 한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 주고받는 대화 역시 머리 아프거나 심각한 내용은 피하는 것이 좋다.
서로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가급적 칭찬해 주고 응원해 주는 분위기가 이어져야 한다.
감정 표출을 목적으로 술을 마시게 되면 건강에도 안 좋을뿐더러,
본인을 넘어 다른 일행에게까지 적지 않은 후유증을 동반하기 때문이다.
주사(酒邪)라는 말이 있다. 술을 마시면 나타나는 나쁜 습관을 말한다.
내 주변에도 이런 성벽을 가진 이들이 더러 있었다.
그들은 대개 평소에는 말수가 없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다.
그런데 일정량의 술이 들어가고 나면 난데없이 돌발 행동이 나타나곤 했다.
'내가 알던 그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경우도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전날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기억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사람이 술을 마시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라며 너그럽게
받아주다가도, 같은 일이 반복되면 그때는 생각이 달라진다.
'아 ~ 실수가 아니었구나', '저 사람과 다시는 술자리를 가지면 안 되겠구나'라는
쪽으로 생각이 옮겨지며,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꽤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이가 있었다.
사람도 좋고 성향도 그런대로 잘 맞아 종종 어울리곤 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전에 없던 이상 행동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웃으며 만났다가 술이 몇 잔 들어가고 나면 말과 행동이 갑자기 거칠어졌다.
상대방에 대해 선을 넘을 정도의 불필요한 지적과 트집을 잡는 일이 반복되었다.
자리에도 없는 제3자의 신상까지 함부로 들먹이기도 했다.
한동안 거리를 두었더니,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며 정중히 사과까지 했다.
진심이 느껴져 깊이 뉘우친 줄 알았다. 아니었다. 사과는 일회성일 뿐이었다.
그제서야 술을 마시면 나타나는 그만의 주사(酒邪)란 걸 비로소 알게 되었다.
잠재되어 있던 성벽이 뒤늦게 밖으로 드러난 경우였다.
최근 들어 가진 그와의 술자리는 예외 없이 모두 같은 모양새로 끝이 났다.
내 마음의 평화를 위해 결국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주사가 나쁜 건 본인만의 문제로 끝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까지
말할 수 없는 피해를 준다는 것이다. 제아무리 이미지가 좋던 사람도 몇 번의
주사가 거듭되다 보면 이전까지의 모든 장점은 그것으로 한순간에 다 묻히고 만다.
핑계도 한두 번이지, 반복되면 급기야 이솝 우화에 등장하는 양치기 소년이
되어 늑대가 나타났다고 아무리 소리쳐 본들 마을 사람 누구도 믿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