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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이 가져다준 인생의 전환점 본문

서울에서 열린 2025 서울마라톤대회에 다녀왔다. 참가자가 아닌 현장 풍경 촬영 목적으로. 1931년에 시작된 서울마라톤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역사가 깊은 대회로, 본래는 동아마라톤이었다가 이후 서울국제마라톤으로 변경된 후, 최근 들어 다시 서울마라톤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세계육상연맹이 인증한 세계육상문화유산이자 국내 유일의 플래티넘 마라톤 대회(참가 선수 수준, TV 중계, 코스 적합성 등을 기준으로 플래티넘, 골드, 엘리트, 라벨 4등급으로 나뉘며, 플래티넘은 그중 최고 등급)로, 엘리트 선수(전문 선수)와 일반인(생활 마라톤)을 모두 합쳐 4만 명이 넘는 참가자 수를 자랑한다. 코스는 광화문을 출발하여 서울 시내를 관통한 뒤 잠실운동장에 이르는 구간이다.
한때 한국 마라톤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도 했었지만, 2009년 이봉주 선수가 현역에서 물러난 뒤 발전은커녕 도리어 3~40년 전으로 후퇴한 상태이다. 일반인들이야 어디까지나 취미로 하는 거지만, 프로 선수들은 등수가 아닌 기록을 중시하는 터라, 아무리 많은 대회에서 우승을 하더라도 기록으로 증명하지 못하면 선수로서의 존재 가치는 빛을 잃는다.
2025년 3월 현재 남자 마라톤 세계 기록은 2023년 미국 시카고 마라톤 대회에서 케냐의 켈빈 킵툼 선수가 세운 2시간 0분 35초인데 반해, 한국 최고 기록은 2000년 일본 도쿄 마라톤 대회에서 이봉주 선수가 세운 2시간 7분 20초로, 무려 25년이 넘는 동안 기록 경신은커녕 도리어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수준이다. 여자 세계 기록이 2시간 09분 56초(케냐의 루스 체픈게티, 2024 시카고 마라톤)인데, 오늘날 우리나라 남자 기록은 그조차 한참을 밑돌고 있다.
나도 한때는 마라톤에 심취했던 시절이 있었다.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에 이르는 7년 동안으로, 선수가 아닌 일반인으로서 건강을 위한 목적이었다. 5킬로미터부터 시작해 10킬로미터, 하프코스(21.0975킬로미터)에 이어 최장거리인 풀코스(42.195킬로미터)까지 두루 경험했다. 그중 서울마라톤도 내가 직접 참가했던 대회 중 하나였다. 운동도 마약처럼 빠져들 수 있다는 걸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다.
지나친 건 아니한 만 못하다는 생각에 도중에 멈추기는 했지만, 마라톤은 단순히 마라톤을 넘어 나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우물 안 개구리와 다름없었던 내 사고의 지평이 그때를 기점으로 비로소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평생의 친구가 된 사진도, 여행도, 글쓰기도 마라톤이 없었다면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그렇듯 살다 보면 누구에게나 한두 번의 기회는 찾아오게 마련이다. 기회가 찾아왔지만 기회인 줄도 모른 채 흘려보내는 이가 있는 반면, 또 다른 누구는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며 의미 있는 인생의 전환점으로 삼기도 한다. 나에게 있어 마라톤은 기회였다기보다는, 그 과정을 즐기는 동안 나 자신조차 미처 모르고 살았던 내 안에 내재된 잠재성을 마라톤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발견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마라톤은 우물 안에 갇힌 나를 건져준 내 인생의 두레박이었던 셈이다. 마라톤이 아니었다면 지금껏 나는 여전히 좁은 우물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단조롭고 답답하기 이를 데 없는 지루한 삶을 이어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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