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그때의 기억 때문에 본문

서울 중심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를 촬영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지하철에서 내려 개찰구를 막 나가려던 참이었다. 한 서양인 노부부가 무언가 잘못된 듯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어쩐지 도움이 필요할 것 같아 조심스레 다가가 물었다. "도와드릴까요?". 익숙한 국제어가 들리자 그들의 얼굴에 갑자기 화색이 돌았다.
"OOO?". 역 이름만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한국말이 익숙지 않은 듯했다. 자신들이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착한 줄 알고 내렸는데 주위를 둘러보니 무언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 모양이었다. 보아하니 한 정거장을 더 지나온 듯했다. 여기가 아니고 반대편 열차를 타고 한 정거장만 되돌아가면 거기가 바로 당신들이 찾는 OOO 역이라며 일러주었다. 그제야 그들의 얼굴에 안도감이 깃들기 시작했다. 서툰 한국말로 고맙다며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그들.
문득 잊고 있던 지난 기억이 떠올랐다. 일본 동경에 갔을 때였다. 숙소가 있던 동네에서 지하철을 타고 중심지인 신주쿠역에 내려 한참 동안 시내 구경을 하고는 돌아가는 열차를 타기 위해 승강장을 찾았다. 본래 내가 타고 온 열차는 서울의 경의중앙선처럼 동경의 외곽을 경유하는 노선으로, 지상에서 지하로 들어가 다시 지상에 위치한 승강장으로 가야 하는데, 아뿔사 ~ 내가 타고 온 노선이 어느 방향인지 통 기억이 나지 않았다. 게다가 복잡하기 이를 데 없는 지하 구조로 인해 내가 빠져나가야 할 출구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몇 번을 물었지만, 영어에 대한 거부감이 강한 그들은 낯선 언어가 들리자 말을 채 걸기도 전에 도망가기에 바빴다. 그러기를 무려 한 시간.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이러다 자칫 낯선 타국 지하에서 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러던 중 다행히도 영어가 가능한 한 서양인(관광객이 아닌 현지에 거주하는 사람인 듯했다)을 만나 가까스로 열차를 탈 수 있었다.
요즘 같으면 인터넷을 활용하면 금세 해결될 문제였지만, 그런 시절도 아니어서 행인을 잡고 묻는 수밖에 없었다. 그때의 당황스러웠던 기억 때문에 어쩌다 우리나라에서 길을 헤매는 외국인이 있으면 나도 모르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그들이 나의 배려를 거부만 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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