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우리말은 쉽다는 착각 본문

누구나 말을 한다.
그러나 제 나이에 맞는 말을 배우고 연습하는 사람은 드물다.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말을 가르치지 않는다.
그런데 의문이다. 어른이 된다고 어른답게 말하는 법을 알게 될까?
혹시 몸은 마흔 살, 쉰 살이 되었는데 말은 이삼십 대에 머물러 있지는 않은가?
말도 자라야 한다. 어른은 어른답게 말해야 한다.
- 강원국, <어른답게 말합니다> 중에서 -
인터넷에 실린 어느 일간지 기사를 보고 있었다. 국내 프로 여자 배구팀에서 뛰다 계약 기간이 끝난 한 외국인 선수가 본국으로 돌아가는데, 그를 데리고 있던 감독이 공항까지 배웅을 나가 눈물을 흘렸다는 내용이었다. 그 선수가 시즌 내내 워낙 빼어난 활약을 펼쳐 다음 시즌에도 같이 하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고 헤어지는 데 대한 아쉬움 때문이었다.
기사에는 이렇게 실렸다. ' V리그를 떠나기로 결정한 메가는 지난 10일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인도네시아로 돌아갔는데 직접 마중 나간 고희진 감독이 눈물을 펑펑 흘려 큰 화제가 됐다.' 여기에서 나의 눈에 띈 것은 '마중'이란 단어였다. 이는 보통 오는 사람을 맞이할 때 쓰는 말로, 기자는 '배웅'이란 단어를 써야 할 자리에 '마중'이란 단어를 잘못 쓴 것이다. 담당 기자에게 이메일을 보냈더니 곧바로 답장이 왔다. '좋은 지적 감사합니다. 바로 기사에 반영하겠습니다.'
내가 우리말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기울이게 된 건 블로그 글쓰기를 하면서부터였다. 글을 쓰자면 우선 어휘를 많이 알아야 하고, 같은 문장 내에서 동일한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는 등의 기본적인 규칙에 관해 어느 정도는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 할수록 우리말이 어렵다는 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많은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혹자들은 내 나라말인데 되는대로 쓰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그러나 같은 말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표현법을 달리해야 할 때가 있다. 유치원 아이들과는 유치원 수준으로, 중학교 아이들과는 중학교 수준으로, 어른이 되면 어른으로서의 수준에 걸맞은 표현을 각각 쓸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말은 생각을 담는 그릇'이라고 한 법정 스님의 말도 새겨볼 일이다.
언젠가 대학 친구와 문자를 주고받은 적이 있었다. 그는 서울 출신으로 박사 학위까지 취득한 사람이었고, 나는 지방 출신이었다. 오래전 일이라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내가 그에게 문자를 보내면서 '스러지다'라는 단어를 사용했다. 그걸 본 친구가 말했다. 서울에 올라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사투리를 쓰고 있느냐고. 처음에는 무슨 뜻인지 영문을 몰랐다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 친구는 내가 '쓰러지다'라고 해야 할 대목에서 '스러지다'를 잘못 썼다고 생각한 모양이었다. 여기서 잠깐 두 단어의 뜻을 살펴보기로 하자. '스러지다'는 '모양이나 자취, 소리, 향기 등이 희미해지면서 사라지다'라는 뜻이고, '쓰러지다'는 '한쪽으로 넘어지거나 무너져 바닥에 닿게 되다'라는 뜻을 지닌 전혀 다른 우리말 표준어이다.
그 친구는 '스러지다'라는 우리말이 존재하는지조차 몰랐던 것이다. 그만큼 우리말은 지속적으로 공부하지 않으면 나이가 들어도 학교 때 배운 어휘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기가 어렵다. 어휘뿐만 아니라,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또한 만만치가 않다.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인 덕분에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나 또한 글을 쓸 때마다 난관에 부딪힐 때가 적지 않다. 그나마 요즘에는 맞춤법 자동 교정 기능이 있어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내가 아는 것과 기계적인 도움을 받는 건 별개의 문제라 심리적인 장벽은 여전히 가시지 않는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아는 게 없으니까. 그러나 하면 할수록 어려운 것이 공부다. 여기가 끝인가 보오, 하고 가 보면 또다시 모르는 것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우리말이 그렇다. 어릴 때부터 쓰던 말이기에 내 나라말은 쉽다는 생각은 엄청난 착각이다. 내가 늘 강조하는 말이 있다. 남의 나라말인 영어 철자 하나는 더없이 꼼꼼히 살피면서 우리말 맞춤법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해서야 되겠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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