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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내가 날마다 하고 있는 일은 단순 반복 작업이다. 신체 건강하고 마음만 있으면 누구든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럼에도 오래 근무하는 이들은 생각처럼 많지 않다. 그런 데서 다음 달이면 어느새 3년 차를 맞이하게 되니 이 업종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다. 평생 사무직에만 종사했던 나는 퇴직 후에는 답답한 사무실을 벗어나 무언가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아내는 '당신 영어 잘하니 그 방면의 일을 한번 찾아보라'라고 했지만, 더 이상 실내에서 하는 일은 생각하기도 싫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지금의 일터를 만나게 되었다. 처음 시작할 때만 해도 전혀 생소한 분야라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나 스스로도 의문이었는데, 막상 하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나와 궁합이 잘 맞았다. 게다가 오전 몇 시간만..

바지 길이를 줄일 게 있어 동네 단골 수선집에 들렀다. 대략 일흔 중반은 넘었을(직접 물어본 적이 없으니 추측할 수밖에) 사장은 지난해 건강 문제로 적잖은 고생을 한 이후, 남편의 안위를 염려한 부인이 날마다 같이 출퇴근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들렀더니 부인의 오른쪽 엄지손가락에 두꺼운 붕대가 감겨 있어 물었다. 무슨 사고가 있었냐고. 지난해 12월 초순이라고 했다. 남편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어디를 다녀오는 길이었다. 목적지에 다다라 차에서 내리던 중, 미처 다 내리지도 않은 상태에서 차가 출발하는 바람에 그만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고 한다. 발등 위로 바퀴가 지나갔고, 넘어진 손도 일부 바퀴에 깔렸다. 당장은 눈에 보이는 외상이나 통증이 없어 병원도 가지 않은 채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사고 후 이틀..

은행에 들렀다. 내 순서가 되어 창구에 앉으니 안내문 하나가 붙어 있었다. '신입행원입니다. 업무가 다소 서툴더라도 너그럽게 양해 바랍니다'라는 내용이었다. 근무한 지 얼마나 되었느냐고 물으니 이제 한 달째라고 했다. 취업이 얼마나 어려운 세상인데 축하한다고 인사를 전했더니 '감사하다. 열심히 하겠노라'라고 웃으며 화답한다. 이런 젊은이들을 만나면 왠지 아들 같고, 딸 같아 절로 눈길이 머문다. 본인은 물론 가슴 졸이던 그녀의 부모가 얼마나 기뻤을까. 그 순간은 마치 세상을 다 얻은 듯한 기분이었을 것이다. 시대마다 어려움이 없지 않은 건 아니었지만, 갈수록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요즘 대학을 졸업해도 갈 곳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명문 대학도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얘기일 뿐, 졸업을 하고 나서도 진로..

작고한 어느 스님이 무소유를 주창한 적이 있었다. 무소유란 아무것도 갖지 말라는 것이 아닌, 불필요한 것들을 갖지 말라는 뜻이라고 했다. 그것이 비단 물질에만 해당될까? 방송을 통해 한 유명 소통 강사의 강연을 보고 있었다. 어느 의뢰인의 사연이 소개되었다. 인간관계가 너무 많아 좀 줄이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본인의 휴대폰에 저장된 연락처가 8,700여 개, 카톡 친구가 6,800여 명, 모임 숫자가 20여 개라고 했다. 바깥 활동이 많다 보니 자연적으로 가족에게 할애하는 시간은 절대적으로 부족할 수밖에. 패널로 참여하고 있는 개그맨의 연락처는 1,600~1,800여 개, 강사의 연락처는 30 ~ 40개 정도라고 했다. 대외 활동이 많은 개그맨은 그렇다쳐도 유명 강사임에도 저장 ..

여기는 서울 경동시장. 갈 때마다 손님들로 붐비는 곳이 있다. 이날은 명절을 앞둔 시점이어서 평소보다 좀 더 많기는 했지만, 언제나 적지 않은 이들이 고기를 사기 위해 긴 줄을 선다. 같은 업종의 가게가 여럿 있는데도 유난히 여기만 붐비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가격이 저렴하다거나, 품질이 더 낫다거나, 가격 대비 양이 많다거나. 현수막에 적힌 내용으로 보아 농장을 직접 운영함으로써 다른 데보다 중간 유통 비용을 상대적으로 줄일 수 있다는 이점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경쟁 업체들이 고객 유치를 위해 치열한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다른 연구와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그저 할 게 없으니 '장사나 해볼까'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뛰어들었다가 결과는 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