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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최근 어디에선가 읽었던 글이 생각난다. 글쓴이가 올 한 해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책 읽는 사람을 본 것이 단 세 명이라고. 내가 봐도 대부분 스마트폰만 열고 있을 뿐, 책 읽는 사람은 정말로 드물다(물론 그중에는 영상 독서를 하는 경우도 더러 있긴 할 것이다). 내가 본격적으로 책 읽는 습관을 들이기 시작한 것은 마흔을 전후한 시기였다(나로서는 이 시기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생업을 제외한 다른 대부분의 것들을 본격적으로 생활화한 것도 바로 이 무렵부터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관심은 있었지만 그저 생각뿐 실천으로까지 옮기지는 못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생활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고, 이후로는 며칠이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불안하기까지 했다. 이는 마치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던 사람이 이삼일 안 하면..
지인들과 술을 한잔할 때면 이따금씩 궁금한 것이 있다. 소주의 경우 식당에서 종업원이 '어떤 걸로 드릴까요?' 물으면 꼭 특정 상표만을 고집하는 이들이 있다. '나는 항상 그것만 마신다'라고. 그럴 때면 그들은 과연 그 맛의 차이를 알고 그러는 걸까 궁금해진다. 현직 시절 직원들과 회식을 하면서 그것에 관해 실제로 실험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특정 상표만을 고집하는 몇 명에게 눈을 가리게 한 후 여러 제조사의 소주를 각각의 잔에 담아 섞어 놓고는 한 명씩 마셔보고 해당 상표를 맞혀 보라고 했다. 그랬더니 그중 한 사람만 정확히 맞혔을 뿐, 나머지는 전혀 감별 능력이 없었다. 위스키의 경우도 비슷하다. 위스키는 숙성 연도별로 가격 차가 존재하는데, 12년산, 17년산, 18년산, 21년산, 30년산 등으..
세상을 살다 보면 나는 열심히 사는데, 나와는 상관없는 외부적인 요인이 치명적인 돌부리가 되어 앞길을 가로막을 때가 있다.본인의 잘못이나 실수로 인한 것이라면 누굴 원망할 수도 없지만, 그것이 아닌 상황에서 생계와 관련된 문제가 생긴다면 청천벽력도 그런 벽력이 없다. 자연재해가 그중 하나일 것이다.117년 만의 폭설이 쏟아진 날 내가 사는 동네 농산물 시장의 지붕이 무너졌다.수많은 상인들이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채소와 과일 등을 팔며 생업을 이어가는 곳이었다.바로 가까이 살면서도 뉴스를 보고서야 알았다. 이틀간 내린 엄청난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일어난 사태였다.내부에 있던 상인들은 사전 안내방송을 통해 미리 대피한 상태라 인명 피해는 없었으나온 가족의 생계가 걸려 있는 일터가 하루아침에 사라진 ..
새로 산 바지를 손볼 게 있어 동네 수선집에 들렀다. 주인장은 올해 여든하나로 오랫동안 양복점을 운영하다가 맞춤옷에 대한 수요가 퇴조하면서 수선업으로 업종을 변경한 분이다. 내가 이사 올 때부터 있었으니까 최소한 20년 이상을 같은 자리에서 생업을 유지해 오고 있는 셈이다. 그동안 옷을 몇 차례 맡겨본 결과 꼼꼼하게 결과물이 잘 나오는 것 같아 믿고 맡기는 단골집이 되었다. 오랜만에 들렀더니 주인과 웬 여성 한 분이 같이 계셨다. 부인이라고 했다. 수선을 하는 동안 커피 한 잔을 권하기에 앉아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남편이 작년에 척추협착증으로 수술을 세 차례나 했다고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마비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더니 당장 수술하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하더란다. 다행히 수술도 잘 되었고..
전날 일기예보에 눈이 많이 내릴 거라 했는데 아침에 일어나 창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자동차 지붕이 덮일 정도로 많이 내려 있었다. 바닥이 질퍽거리는 걸 보면 비까지 섞여 내린 모양이었다. 할 수 없이 운전을 포기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해야만 했다. 일과를 수행하는 도중에는 거센 눈보라가 작업장 안으로 들이칠 만큼 기세는 강해졌다. 불현듯 군인 시절 자주 불렀던 '용사의 다짐'이란 군가의 한 대목이 생각났다. '눈보라 몰아치는 참호 속에서 ~ 한 목숨 바칠 것을 다짐했노라 ~ '. 퇴근할 무렵이 되니 발이 푹푹 빠질 만큼 눈송이는 점점 더 굵어졌다. 11월에 눈이 내리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이지만, 첫눈치고는 폭설에 가까운 양이었다. 단풍잎이 채 지기도 전에 눈이 내리니 마치 가을과 겨울이 공존하는 느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