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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어디선가 읽었던 이야기다. 아흔이 넘은 노인이 있었다. 예순 무렵에 정년퇴직을 한 후 떠날 날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아(본인 생각에) 특별히 하는 일 없이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게 아흔을 넘어서까지 살게 되자 비로소 땅을 쳤다고 한다. 그처럼 오래 살 줄 알았더라면, 지난 세월을 함부로 허비하지 않고 좀 더 계획적으로 보냈을 거라고. 적지 않은 이들이 나이가 들면 남들이 뭐라 하기 전에 스스로 자신을 규정하거나 제한하는 경우가 있다. ' 앞으로 살면 얼마나 더 산다고 이 나이에 ~ ', '남들이 보면 늙어서 주책이라 할까 봐 ~ ' 등의 이유로 무언가 하고 싶은 일이 있어도 망설이거나 지레 포기할 때가 많다. 마치 노인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죽을 날만 기다려야 하는..

급여 생활자들의 공통된 바람은 '언제 이 자리를 벗어나 나만의 사업을 할까'일 것이다. 아무리 연봉이 많고, 복지 여건이 좋더라도, 남의 지시를 받아 가며 남의 일을 해야 하는 것이기에 갈수록 자존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바람을 실천으로 옮기는 비율은 그리 높지 않다. 10년이 채 되지 않은 경력을 지닌 어느 공영방송 아나운서가 '느닷없이' 사표를 냈다. 방송국에 있을 때도 딱히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으니 대중들은 그런 아나운서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를 정도였다. 존재감 없는 인물을 어디서 선뜻 불러줄 리는 만무하여, 퇴직 후 한동안은 일이 없어 택배 상하차, 세탁물 수거 등의 궂은일을 하며 입에 겨우 풀칠을 했다고 한다. 온실 속에 있을 때는 자신의 능력이 출중하여 세상이 대우를 해주..

예로부터 우리 사회는 순위를 정하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학교 성적은 말할 것도 없고, '아시아에서 O 번째로 높은 건물', '세계에서 O 번째로 긴 다리' 등 어디든 순위를 부여하며 그 위세나 자신들의 업적을 자랑하곤 했다. 그런 심리는 요식업계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길을 오가다 보면 '전국 O 대 짬뽕', 'OO 3 대 곰탕집', 'OO 5 대 냉면집' 등의 홍보 문구를 더러 접하곤 하는데 그때마다 궁금증이 인다. 저 순위는 도대체 누가 정하는 걸까,라고. 그에 비하면 'KBS, MBC, SBS 어느 방송에도 안 나온 집' 같은 문구는 차라리 애교에 가깝다. 여기서 'O 대(大)'의 '대'는 규모의 크기보다는 음식을 잘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운동 경기라면 모든 단체가 참가하는 대회라도 있어 ..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하기 이전 필름 카메라 시대에는 사진을 인화하고 나면 뒷면에 촬영 장소와 날짜를 종종 기록하곤 했었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그곳이 어디였는지, 혹은 언제쯤이었는지 기억이 가물거릴 때가 있어 그걸 미연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최근 국내 여러 곳을 다니면서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변화가 한 가지 있다. 유명 관광지나 해수욕장 등에 그곳의 이름을 영어나 우리말로 표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덕분에 사진을 찍고 나면 예전처럼 굳이 메모를 하지 않아도 그곳이 어디였는지 금방 식별할 수 있어 좋다. 동네 지하철역 광장에도 전에 없던 표식이 설치되었다. 같은 장소임에도 그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크다. 그 하나만으로 단조롭던 광장 분위기가 한결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말은 없지만, 마치 이제 ..

이따금씩 명동 나들이를 한다. 주로 지인과의 점심 약속이 있을 때다. 가능하면 매번 새로운 곳을 물색하는 편이어서, 갈 때마다 장소는 달라진다. 세상은 넓고, 갈 데는 많고, 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늘 같은 곳만을 고집하게 되면 그만큼 경험치가 제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듯이, 하나라도 더 경험치를 쌓게 되면 그에 비례하여 세상 보는 눈도 넓어질 수 있고, 그것 또한 소소한 여행의 일환이라는 생각에서다. 명동의 특징 중 하나는 다른 곳에 비해 유난히 외국인 관광객들이 눈에 많이 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번에 갔던 날은 평일이어서인지, 아니면 추운 날씨여서인지 다른 때에 비하면 다소 한산한 분위기였다. 최근 벌어진 우리의 불안정한 정치 지형도 일부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