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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삶은 무수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을 쓰거나 말하지 않으면 모두 사라진다. - 박경희, 중에서 - 이따금씩 빵을 끼니 대용으로 먹을 때가 있다. 아주 어쩌다 있는 일이다. 그런데 빵은 아무리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밥을 먹으면 포만감이나 든든함 같은 게 있는데 반해, 빵은 헛배만 부를 뿐 간식 이상의 느낌이 없다. 왜 그럴까? 나대로의 분석에 따르면 오랫동안 길들여진 우리의 식습관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해외여행을 가서 며칠만 지나면 곧 우리네 밥과 김치가 생각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달리 어릴 때부터 빵을 주식으로 먹어온 서양인들은 우리가 밥을 먹으면 안정감을 찾듯, 그들 역시 빵을 먹어야 비로소 먹은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
사돈총각의 결혼식이 있었다.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나 첫눈에 '바로 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인연이란 게 따로 있기는 한 모양이다. 아무리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려고 해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니까 말이다. 나도 비교적 일찍 아이들을 출가시켰지만, 사돈댁도 딸에 이어 아들까지 혼사를 마쳤으니 부모로서 가장 큰 숙제를 마친 셈이다. 오늘날에는 결혼 연령이 전반적으로 늦어졌을뿐더러, 안 하거나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잘해야 둘 중 한 명만 보낸 경우가 태반이다. 부모의 나이가 일흔, 여든을 넘어가는데도 자식이 결혼을 안 하고 있으면 시름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과거와 비교하면 오늘날의 결혼 풍습은 꽤 많이 변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기재하는 ..
곤히 잠들었다가 귓전을 맴도는 모깃소리에 잠에서 깼다. 계속 자야 하는데 한 번 깨고 나면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다. 매일 새로운 글감을 발굴해야 하는 나로서는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소재를 하나 건진 것까진 좋지만 괘씸하기 짝이 없다. 이런 지가 벌써 몇 주째다. 모두 11월 들어 겪고 있는 일이다. 여름에도 없던 모기가 겨울을 코앞에 둔 시점에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 집만 그런 줄 알았더니 며칠 전 사 본 주말 신문에 '가을 모기'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린 걸 보면 내가 사는 동네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그동안 꽤 여러 마리를 잡았음에도 불만 끄면 어디선가 또 나타나 신경을 거스르게 한다. 앵앵거리는 소리가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불태운다'는 옛 속..
계절에 따른 자연 풍경을 보자면 시점이 매우 중요하다. 특히 여름과 겨울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은 봄이나 가을엔 더욱 그렇다. 올가을은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단풍이 늦어지는 바람에 때를 맞추기가 더 애매하다. 이 가을이 가기 전에 은행나무 단풍을 꼭 보고 싶었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흔한 단풍이 아닌 오래되고 기품 있는 은행나무 단풍을 말이다. 집에서 한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가볼 만한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모두 대중교통이 닿지 않아 망설여졌다. 그냥 이대로 해를 넘겨야 하나 고민하던 차 마침 블로그 이웃님께서 인천 장수동 은행나무 소식을 올렸다. 무려 800년이나 묵었다는.. 인천대공원 옆이라는데 왜 여태 그걸 몰랐을까. 사진을 보니 단풍이 절정이었다. 이삼일 내로 가지 않으면 조만간 다 떨어질 ..
당신을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그 사람이 부모든, 자식이든, 누구든 가장 중요한 것은 첫 번째로 물리적 거리를 두는 것이다. - 공지영, 중에서 - 술에 관한 한 나는 우리집에서 돌연변이다. 선친도 그랬고, 다른 형제들도 일절 술을 마시지 못한다. 안 마시는 게 아니라 태생적으로 알코올 분해가 안 되는 체질들을 타고 났다. 나도 잘 마신다기보다 그저 남들과 어울리는 정도이다. 우리 집안 자체가 술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편이다. 술을 마시되 나대로 견지하는 규칙이 있다. 즐겁게 마시고 밝은 분위기 속에서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술자리에서의 화제 역시 너무 무겁거나 심각한 얘기, 또는 예민한 얘기는 피하는 편이다. 나도 그렇지만 누군가 그런 화제를 거듭해서 꺼내면 좋았던 분위기는 어느새 가라앉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