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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언젠가 지인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을 때였다. 예식장 안내판에 걸린 신부의 혼주 이름에 두 사람이 아닌 한 명의 이름만 적혀 있었다. 사별을 했나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신부가 어릴 때 부모가 이혼을 했다고 한다. 무슨 심각한 문제가 있었는지 이혼 후 당사자는 물론 자식들과도 완전히 인연을 끊었다고 한다. 이혼을 하더라도 자녀 결혼식에는 더러 참석하기도 하는데, 아예 등을 돌린 모양이었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3.5퍼센트로 100쌍이 결혼을 하면 그중 3~4쌍 정도가 이혼을 한다는 얘기다. 남녀의 사랑은 시대를 막론한 인류의 영원한 관심사다. 만약 누가 그것을 예술의 소재로 사용하지 못하도록 강제로 규제한다면 이 세상의 모든 예술가는 밥을 굶어야 할지도 모른다. 문학이나 음악은 물론..
옛 직장 동료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이번에 찾은 장소는 종로 3가로 서울 토박이 후배가 안내를 맡았다. 예전에 열심히 다녔는지 나에 비하면 서울 지리를 꽤 속속들이 잘 아는 편이다. 어느 지역이든 스스로 부지런히 발품을 팔지 않으면 그냥 살 뿐 이방인이나 다름없을 때가 많다. 흔히 종로 하면 그저 뭉뚱그려 종로인 줄만 알지 구체적으로 어떤 동네가 있는지까지 꿰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종로 3가에 관한 지식으로는 귀금속 상가, 탑골공원이 있는 곳, 또는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라는 정도가 전부였다. 대개 대로만을 통해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고,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뒷골목까지 탐색할 일은 거의 없었다. 종로구 익선동. 동네 이름이야 익히 들어봤지만, 위치상으로 거기가 정확히..
삶은 무수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이야기들을 쓰거나 말하지 않으면 모두 사라진다. - 박경희, 중에서 - 이따금씩 빵을 끼니 대용으로 먹을 때가 있다. 아주 어쩌다 있는 일이다. 그런데 빵은 아무리 먹어도 먹은 것 같지가 않다. 밥을 먹으면 포만감이나 든든함 같은 게 있는데 반해, 빵은 헛배만 부를 뿐 간식 이상의 느낌이 없다. 왜 그럴까? 나대로의 분석에 따르면 오랫동안 길들여진 우리의 식습관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아닐까 싶다. 해외여행을 가서 며칠만 지나면 곧 우리네 밥과 김치가 생각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우리와 달리 어릴 때부터 빵을 주식으로 먹어온 서양인들은 우리가 밥을 먹으면 안정감을 찾듯, 그들 역시 빵을 먹어야 비로소 먹은 것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
사돈총각의 결혼식이 있었다. 2년 전 지인의 소개로 만나 첫눈에 '바로 이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런 걸 보면 인연이란 게 따로 있기는 한 모양이다. 아무리 중간에서 다리를 놓아주려고 해도 안 되는 사람은 안 되니까 말이다. 나도 비교적 일찍 아이들을 출가시켰지만, 사돈댁도 딸에 이어 아들까지 혼사를 마쳤으니 부모로서 가장 큰 숙제를 마친 셈이다. 오늘날에는 결혼 연령이 전반적으로 늦어졌을뿐더러, 안 하거나 못하는 경우도 많다. 게다가 잘해야 둘 중 한 명만 보낸 경우가 태반이다. 부모의 나이가 일흔, 여든을 넘어가는데도 자식이 결혼을 안 하고 있으면 시름은 갈수록 커질 수밖에. 과거와 비교하면 오늘날의 결혼 풍습은 꽤 많이 변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청첩장에 계좌번호를 기재하는 ..
곤히 잠들었다가 귓전을 맴도는 모깃소리에 잠에서 깼다. 계속 자야 하는데 한 번 깨고 나면 다시 잠들기가 쉽지 않다. 매일 새로운 글감을 발굴해야 하는 나로서는 덕분에 생각지도 않은 소재를 하나 건진 것까진 좋지만 괘씸하기 짝이 없다. 이런 지가 벌써 몇 주째다. 모두 11월 들어 겪고 있는 일이다. 여름에도 없던 모기가 겨울을 코앞에 둔 시점에까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우리 집만 그런 줄 알았더니 며칠 전 사 본 주말 신문에 '가을 모기'라는 제목의 칼럼이 실린 걸 보면 내가 사는 동네만 그런 게 아닌 모양이다. 그동안 꽤 여러 마리를 잡았음에도 불만 끄면 어디선가 또 나타나 신경을 거스르게 한다. 앵앵거리는 소리가 보통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불태운다'는 옛 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