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서울 여행 (12)
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옛 직장 동료들과의 모임이 있었다. 이번에 찾은 장소는 종로 3가로 서울 토박이 후배가 안내를 맡았다. 예전에 열심히 다녔는지 나에 비하면 서울 지리를 꽤 속속들이 잘 아는 편이다. 어느 지역이든 스스로 부지런히 발품을 팔지 않으면 그냥 살 뿐 이방인이나 다름없을 때가 많다. 흔히 종로 하면 그저 뭉뚱그려 종로인 줄만 알지 구체적으로 어떤 동네가 있는지까지 꿰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내가 알고 있는 종로 3가에 관한 지식으로는 귀금속 상가, 탑골공원이 있는 곳, 또는 창덕궁으로 이어지는 길목이라는 정도가 전부였다. 대개 대로만을 통해 지나치는 경우가 많았고, 특별한 일이 있지 않으면 뒷골목까지 탐색할 일은 거의 없었다. 종로구 익선동. 동네 이름이야 익히 들어봤지만, 위치상으로 거기가 정확히..
대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나의 행동반경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집이나, 학교, 어쩌다 종로를 나가는 정도가 전부였다. 그렇다고 특별히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었다. 오랫동안 시골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만 살다 보니 다른 세계에 대한 사고 확장의 기회를 갖지 못했던 이유가 그중 하나요, 누군가 앞에서 나를 이끌어 주는 이도 마땅히 없었다는 점, 게다가 당사자인 나 또한 워낙 세상을 모르다 보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질 않았던 시기였다.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조금씩 갖게 된 건 내 나이 마흔을 전후한 시점이었다. 내 인생 내가 사는데 왜 남들 눈치를 살피며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하게 된 것도 그때부터였다. 우연한 기회에 사진의 세계를 접하게 된 것이 결정적인 기폭제가 되었다. 그렇..
얼마 전 지인의 결혼식을 마친 후 딸의 차를 타고 이태원 길을 통과하던 중 도로 경사가 무척이나 심하고 유난히 젊은이들이 많이 몰려 있는 한 골목이 눈에 띄었다. 딸아이더러 '여기가 어디냐'라고 물으니 '그 유명한 경리단길'이라고 했다. 그동안 이름만 들었지 한 번도 가보질 않은 터라 조만간 현장 답사를 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딸아이더러 웃으며 '아빠가 여기 오면 괜히 물 흐린다고 욕먹겠지?'라고 했더니, 이 녀석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다'라고 하는 것이었다. 언제부터인가 경리단길을 비롯하여 양리단길, 황리단길 등의 비슷한 이름들이 인구에 널리 회자되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생전 들어보지도 못한 낯선 용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는 시대여서 감당이 힘들 정도지만 그래도 뜻이..
우리 사회는 낡은 것이라는 이유로 옛것을 함부로 없애버리는 관행이 있는 것 같다. 자랑스러운 역사는 그 나름대로, 부끄러운 역사는 또 그 나름대로 후세대에게 교훈을 줄 수 있을 텐데 생각 없이 밀어붙이는 사례가 적지 않다. 한번 무너뜨리고 나면 외관이야 얼마든지 재건이 가능하겠지만, 그 안에 깃든 역사와 숨결은 다시는 되살릴 수 없다는 사실을 왜 간과하고 있는지. 그런 가운데서도 예외는 있다.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있는 문화비축기지가 그 중 하나이다. 여기는 본래 1970년대 초에 극심한 석유파동을 겪고 난 후 비상시를 대비하여 정부 차원에서 석유를 비축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그러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위험 시설로 분류되어 폐쇄된 후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었다. 이후 2013년 석유비축기지 활..
내가 근무했던 부대는 대한민국의 수도를 방어하는 임무를 띠고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서울 주변에 배치가 되었으니 얼마나 좋으냐며 부러워들 했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유달리 훈련이 많은 데다 외출 외박에도 제약이 적지 않아 나의 경우 입대 후 13개월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첫 휴가를 나올 수 있었다. 그 시절 부대 임무를 띠고 나가던 방면에 난지도라고 하는 섬이 있었다. 서울시에서 배출되는 쓰레기를 매립하던 장소였는데, 거대한 산을 이룰 만큼 규모가 엄청났다. 특히 여름철이면 무어라 형언하기 어려운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곳을 한번 지나온 날이면 며칠 동안 몸에서 냄새가 빠져나가지 않을 정도였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이곳이 문제가 되었다. 바로 인근에 경기장 시설이 들어설 예정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