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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관악산에 올랐습니다.
본래 강원도 설경을 보러 갈 심산이었지만, 전국적으로 눈이 녹고 있다는 소식에 뒤늦게 방향을 선회하고 말았습니다.
겨울 산은 눈이 백미인데, 설경을 보지 못할 바에야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지요.
과천향교를 출발하여 연주대를 지나 팔봉능선을 타고 서울대 수목원으로 내려오는 코스였습니다.
팔봉능선은 이번에 처음 타 본 길인데 꽤나 어려운 코스였습니다.
8개나 되는 가파른 봉우리를 끊임없이 넘어야 했던 것도 그랬거니와, 곳곳에 채 녹지 않은 얼음까지 있어 위험하기까지 했습니다.
봉우리를 다 넘어오면서 같이 간 일행더러 그랬습니다. “아무래도 이 코스는 다시 오기 어려울 것 같다.”고.
산행의 목적은 산을 타는 재미도 재미지만,
마음 맞는 일행과 함께 걸으면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재미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운이 좋으면 괜찮은 인연을 만나는 행운까지 덤으로 누릴 때도 있습니다.
이번 관악산 산행길이 그러했습니다.
일행과 바위에 자리를 깔고 앉아 홍어회를 안주 삼아 한 잔을 하고 있는데,
연세 지긋하신 남자분이 혼자서 저희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습니다.
“괜찮으시면 한 잔 하고 가시라.”며 자리를 권했더니 마다하지 않고 동석을 하더군요.
통성명을 한 후 사는 곳이 어디며, 어디에서 출발해 어디로 가고 있느냐는 등,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일본 무역상사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뒤 지금은 모 기업에서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했습니다.
그 동안 산을 다니며 봤던 풍경들이며, 소회, 이런저런 가정사며 인생관 등등,
처음 만난 사이임에도 참으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서로 간 적지 않은 나이 차이가 있었음에도 세월의 벽을 느낄 수 없을 만큼 많은 부분에서 공감대가 느껴졌습니다.
가는 방향이 달랐기에 서로 인사를 하고 헤어진 뒤,
그 분이 건네준 명함에 적힌 전화번호로 다음 날 아침 인사 문자를 보냈습니다.
“교훈적인 말씀 많이 들려주셔서 감사하다.”고.
얼마 있지 않아 답장이 왔습니다.
“네, 그리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고요. 오히려 저의 머리에 기억될 수 있는 두 분을 만나 영광이지요.
두 분 만나고 문득 피천득 선생님의 인연이라는 글귀가 생각나네요.
‘어리석은 사람은 인연을 만나도 몰라보고, 보통사람은 인연인 줄 알면서도 놓치고,
현명한 사람은 옷깃만 스쳐도 인연을 살려낸다’고.. “
생각지도 못한 인연을 만난 덕분에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관악산 산행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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