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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는 경험

자유인。 2023. 1. 30. 20:42

 

대학교 신입생 시절, 대부분의 학생들에게 가장 큰 관심사는 이성과의 미팅이었다.

그것은 남녀 할 것 없이 공통적인 화제의 중심이었다.

시골에서 갓 올라온 나로서는 여학생들에게 관심은 많았지만, 이성을 접해 본 경험이 없어 두려움 비슷한 게 있었다.

그때만 해도 말주변이 없었기에 동성끼리 하는 일상 대화야 그럭저럭 주고받을 수 있었지만,

난생처음 보는 여학생들과의 대화는 그와는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이었다.

미팅은 고사하고 같은 과 여학생들과의 관계에서조차 겉돌기 일쑤였다.

'간드러지는' 서울말을 쓰는 학생들 앞에만 서면 왠지 모를 주눅부터 들었고, 그들은 나와는 딴 세계 사람들인 양 느껴졌다.

말은 곧 자신감인데, 지방 말씨에 발음도 불분명한 데다 위축까지 되어 있으니 제대로 대화에 낄 수가 없었다.

시골 출신이 가지는 일종의 콤플렉스 같은 것이었다.

다른 또 하나는 낯선 음식 문화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처음엔 단체로 만났다가 마음에 드는 상대가 있으면 별도의 '애프터'를 신청하곤 했는데,

그럴 때면 주로 만나는 곳이 학교 근처 레스토랑이었다. 매달 고향에서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받아 쓰는 학생 형편에 언감생심 어울리지도 않는 곳이었지만, 어떻게든 잘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그렇게 무리수를 두곤 했었다.

거기에서 주로 먹던 메뉴는 돈가스나 함박스테이크 같은 것이었는데,

문제는 이전에 시골에서 그런 음식을 한 번도 접해 보지를 못했다는 것이었다.

접하는 건 고사하고 이름조차 처음 듣는 것들이었다.

먹는 방법에 들어가면 더 머리가 아팠다.

양식을 먹을 때는 포크는 왼손에, 나이프는 오른손에 쥐어야 하고, 수프를

먹을 때는 숟가락질을 앞에서 뒤로 하는 거라는 설교를 듣고 나면 그것에 신경 쓰느라

맛은커녕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학교 구내식당이 몇백 원 할 때 2,000원 정도였으니 값은 또 얼마나 비쌌던가.

상대와 헤어진 후 따로 라면을 한 그릇 비우고 나서야 비로소 먹은 느낌이 들었다.

이를테면 시골에서 농사만 짓던 사람이 한 번도 입어 보지 못한 양복을 걸친 격이었다.

오랜만에 예산에 도착하니 점심 때가 지나 있었다.

종종 들르곤 했던 시장 근처 어죽집을 찾았으나 그 사이 폐업을 했는지 다른 간판이 걸려 있었다.

대안으로 찾은 곳이 인근 돈가스 가게였다.

학창 시절에 비하면 값이 많이 오르긴 했지만, 그 동안의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당시 레스토랑에서 여학생과 먹던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저렴한 편이다.

양도 훨씬 더 푸짐하고, 맛도 즐길 수 있는 데다, 먹는 방법까지 숙지했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

문화는 곧 경험이다. 처음부터 익숙한 것은 없다.

그때는 더없이 낯설고 어색했지만, 경험이 쌓이고 보니 내 것인 양 자연스럽다.

본의 아니게 나를 위축시키며 주변인으로 떠돌게 했던 서울말 역시,

나고 자란 고장보다 더 오랜 세월의 때가 묻고 보니 이제는 고향말인 듯 익숙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몰랐던 세상을 하나씩 배우며 성장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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