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그때의 깨달음이 없었다면 본문
나는 스스로를 가리켜 슬로 스타터(slow starter) 형 인간이라 부른다.
권투로 말하면 1라운드부터 몸이 풀려 일찌감치 자신의 의도대로 경기를 풀어가는
선수가 있는 반면, 초반에는 상대방의 페이스에 휘말리다가 몇 라운드를 거듭해야
비로소 몸이 풀리는 선수가 있는데 나는 바로 후자의 경우라는 뜻이다.
여행에 있어서 특히 그랬다.
내가 여행에 눈을 뜨기 시작한 것은 내 나이 마흔을 전후해서였다.
이전까지는 학창 시절 다녔던 소풍이나 모임에서 단체로 떠나는 행사,
여름이면 가족을 대동하고 떠나는 휴가, 명절이면 의무적으로 오가는 고향이나
처가 나들이 등이 내가 해 왔던 여행의 전부였다. 엄밀히 말해 여행과는
거리가 먼 단순한 '이동'에 불과한 것이었다.
답답하고 단조롭기만 했던 인생에 혁명적인 변화가 일어난 것은
카메라를 가까이하면서부터였다. 우연한 기회에 사진에 재미를 느끼게 되면서
그것이 발전하여 제대로 된 카메라를 장만했고, 그때부터 전국을 떠돌기 시작했다.
조금 과장하면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생각이 떠오르면 거침없이 길을 나섰다.
사진에 빠져든다는 것은 그에 비례하여 새로운 피사체에 대한 욕구가
그만큼 증가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10년 동안 다니기 시작한 것이 이전의 40년간 다닌 것의
몇 배를 넘는 숫자였다. 길을 나서는 횟수가 거듭되면서 여행을 즐기는 기술도
시나브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일은 일일뿐 진정한 내 삶이 아니라는 것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것도 여행에 눈을 뜨면서 비로소 알게 된 깨달음이었다.
지금 운영하는 블로그 또한 그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이다.
새로운 세상에 눈을 뜨면서 한동안 집중적으로 다닌 곳이 전라도였다.
예로부터 예향의 고장이라 불리는 호남 땅을 한 번도 밟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목포로, 담양으로, 남원으로, 전주로, 강진으로, 순천으로, 장흥으로,
신안으로, 부안으로, 여수로 바람처럼 물처럼 떠다녔다.
이후 행선지는 다른 지방을 넘어 해외로까지 점차 확대되었고, 그로부터
여행은 나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되었다.
그때의 깨달음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여전히 출구가 보이지 않는
캄캄한 암흑기를 걷고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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