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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동 산책(2) - 옛 추억의 향기 본문
내가 지인과 명동을 약속 장소로 정한 데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대학 초년생 시절 어떤 여학생(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과 명동에서 미팅을 한 적이 있었다.
중국대사관 근처 '가무'라는 카페였다. 거기에서 비엔나커피를 마셨던 기억까지.
비엔나커피(Vienna Coffee)란 오스트리아에서 유래한 커피로 오늘날의
아인슈페너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데, 아메리카노에 달콤한 휘핑크림(whipping
cream=생크림을 세게 저어 잘게 거품을 낸 크림)을 올린 커피를 말한다.
어느 날 문득 까맣게 잊고 있던 그 시절이 생각나 비엔나커피를 찾으니 다들
'그런 커피가 다 있느냐'라며 반문하는 것이었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을 검색했더니
놀랍게도 '가무'라는 카페가 지금도 옛 모습 그대로 같은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것이 오늘날의 영업 환경인데
어떻게 지금까지? 당시 마셨던 비엔나커피 역시 예전과 다름없이 여전히 주메뉴로
판매가 되고 있었다. 20대에 밟았던 계단을 수십 년이 흘러 다시 올라가는데
감개가 무량했다.
그 사이 주인이 한차례 바뀐 것만 빼고는 간판이며, 계단이며, 의자며, 테이블이며
그때와 조금도 변한 게 없었다. 1972년도에 개업을 했으니 도대체 몇 년이란 말인가?
서울시에서 30년 이상 운영을 이어오고 있는 점포를 대상으로 관광 자원으로서의
가치가 있는 가게에만 부여하는 '오래가게'에도 선정이 되어 있었다.
나로선 지금껏 살면서 이런 비슷한 경험이 두 번째였다.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집을 떠나 대구에서 고등학교를 다닌 적이 있었다.
당시 자취를 했었는데, 몇 년 전 처가에 내려갔던 길에 불현듯 그때 자취방이
생각나 혼자서 옛 동네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이후 강산이 몇 번이나 바뀌었으니
설마 남아 있을 거란 기대는 아예 하지 않았다. 그냥 단지 옛 추억을 한번
더듬어보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워낙 오랜만에 찾은 동네라 여기가 거기 같고, 거기가 여기 같았다.
주변을 몇 바퀴나 돌고 돌았을까. 아무리 찾아도 보이질 않아 그만 단념하고
돌아서려는 순간, 내가 살았던 바로 그 집이 거짓말처럼 눈앞에 나타났다.
심장이 멎는 듯 얼마나 가슴이 뛰었는지 모른다.
명동 '가무'를 다시 찾은 순간이 꼭 그랬다. 이날 내가 '가무'에서 마신
비엔나커피는 단순한 커피가 아니었다. 40년도 훨씬 넘은 나만의 옛 추억을
사발째 들이켠 것이나 다름없었다. 마치 잃어버린 옛 친구를 찾은 듯,
잃어버린 옛사랑을 만난 듯 내 마음은 어느새 풍선이 되어 그 시절의 구름
위를 훨훨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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