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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분야든 오랫동안 구축된 벽을 허문다는 건 쉽지 않다.
기존 세력들이 자신의 영역을 양보하지 않으려는 고집과 배타성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연초부터 갈등이 지속되고 있는 의료 분쟁 하나만 봐도 알 수 있다.
음악계 역시 마찬가지다.
최근 들어 크로스오버(crossover) 음악이란 말이 널리 유행하고 있다.
이는 서로 다른 장르의 음악을 혼합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만남이다.
세계적으로 이런 음악이 등장한 건 1981년 미국의 대중 가수인
존 덴버와 스페인의 오페라 가수인 플라시도 도빙고가 발표한 <Perhaps Love>
라는 노래가 발표되면서부터였다.
우리나라에서 이 말이 퍼지기 시작한 건 대략 1989년도부터로,
가수 이동원과 테너 박인수가 부른 <향수>라는 곡이 등장하면서부터였다.
정지용 시인의 시도 좋았지만, 김희갑 작곡가의 멜로디에 노래를 부른 두 사람의 조화가
더없이 잘 어우러져 우리나라 가요사에 길이 남을 명곡 중의 명곡이다.
개인적인 추측이지만, <Perhaps Love>의 영향을 깊게 받지 않았을까 싶다.
이전까지만 해도 클래식의 벽은 높았고, 무척이나 배타적이었다.
'감히' 대중가요와 목소리를 섞는다는 건 자신들의 음악의 격을 낮추는 거라 생각했다.
박인수 교수 역시 <향수>를 발표하고 난 뒤 '클래식 음악을 모독했다'라는
이유로 국립 오페라단에서 제명당하는 수모까지 겪어야 했다.
비록 박 교수는 온갖 고초를 겪었지만, 그가 뿌려놓은 밀알 덕분에
이후부터는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과 대중가요의 만남이 자연스러운 현상이 되었다.
클래식뿐만 아니라 국악과 대중가요, 국악과 힙합까지 협업을 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외로운 개척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걸 보면 새로운 문화나 문명은 창의성을 가진 소수의 천재나
수재가 이끌어간다는 말이 결코 허언이 아니다. 모두가 똑같은 생각만
하는 사회에서 진화를 기대한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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