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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에서 만난 사람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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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과의 점심 약속이 있어 다녀오는 길.
서울에 갈 때면 특별한 경우가 아닌 한 지하철을 이용한다.
도로 정체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 오가는 동안 책도 볼 수 있으니
이보다 편리한 교통수단은 없기 때문이다.
평일 낮 시간의 지하철엔 장년층이 눈에 많이 띈다.
65세 이상의 노인에게 주어지는 무료승차 혜택의 영향이 큰 듯하다.
지하철 안에서 목격한 몇 가지 유형의 사람들.
1) 70대 전후쯤 되어 보이는 남성.
좌석에 앉아 한가롭게 종이 신문을 넘겨가며 보고 있다.
손 전화가 등장하기 전에는 흔히 보던 풍경이지만, 요즘 지하철에서는
보기 힘든 광경이다. 신문의 크기 때문에 넘기다 보면 다른 이에게
불편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옆 사람이 힐끗힐끗 쳐다보며
눈치를 주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그만의 시사 공부에 열심이다.
2) 6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
사람들이 많은 지하철 안에서 전화기를 잡고 좀처럼 그칠 줄을 모른다.
굳이 듣고 싶지 않은데도, 저절로 다 들릴 만큼 데시벨은 높았다.
크게 중요하지도 않은 잡담에 가까운 내용이다.
상대방의 근황이 궁금해서라기보다는 무료한 시간을 때우기 위한 목적이 커 보인다.
혼자 있는 시간을 견디지 못하는 이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이다.
가만히 보니 저 남자 어딘가 목소리가 익숙하다.
조금 전 나와 같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부터 전화기를 잡고 있던 인물이었다.
3) 6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성.
대본을 외운 건지, 즉석연설인지 막힘없는 언변으로 불특정
다수를 향해 하나님을 믿으라고 부르짖는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이란다.
짧게 끊어주면 좋겠는데, 공해에 가까울 정도로 길어진다.
누구 하나 귀 기울이는 사람이 없다.
그 말을 듣고 교회를 찾는 이들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4) 퇴근 시간이 가까워오면서 지하철 안은 승객들로 붐비기 시작했다.
어느 정차역에서 웬 손수레 하나가 들어선다.
오늘날의 도시 지하철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광경이었다.
7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성의 모습은 초췌했고, 눈의 초점은 불안해 보였다.
오물이 잔뜩 묻은 수레엔 어느 쓰레기 더미에서 주운 듯한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들이 가득했다.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수레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왜 지하철에 저런 지저분한 걸 끌고 들어오느냐'의 표정이었다.
삶의 고단함 때문인지 남자는 주변의 그런 시선에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어서 목적지가 가까워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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