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피할 수 없는 세월의 강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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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을 맞아 올라오셨던 장모님께서 내려가셨다.
일주일 중 이틀은 처남집에서, 나머지 닷새는 맏딸인 우리 집에서 머무셨다.
당신은 성장기를 통해 늘 인정 욕구에 목이 말랐던 나의 존재를 세상에서 처음으로 인정해 주신 분이었다.
잘 하지도 못하는 나를 '우리 맏사위가 최고'라며 주변에 민망할 정도로 자랑을 하신다.
급기야 자식뻘인 나에게 '존경'이란 표현까지 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올해로 86세. 본래 아주 건강한 체질은 아니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급격히 늙으셨다.
두드러진 변화로는 우선 기력이 많이 떨어지면서 동작이 눈에 띄게 느려지셨다.
게다가 망각 증상이 무척 심해지셨다. 당신의 물건을 어디 두었는지 기억하지 못해
계속 찾으시거나, 조금 전 하셨던 똑같은 질문을 반복적으로 물으신다.
"O 서방은 여기 이사 온 지 몇 년이나 됐는가?"
"예, OO 년 됐습니다."
얼마쯤 지나자 또다시 같은 질문이 처음인 듯 되풀이된다.
"그러니까 O 서방은 여기 이사 온 지 몇 년 됐는가?"
"예, 올해로 OO 년째입니다."
"자네 친구들은 자식들 출가를 다 시켰는가?"
"아직도 못 보낸 친구들이 더 많습니다."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똑같은 질문이 처음인 듯 이어진다.
"그러니까 자네 친구들은 자식들 출가는 다 시켰는가?"
"아직까지 한 명도 못 보낸 친구들이 많습니다."
한때 문학소녀라 불릴 정도로 감성적이면서, 한평생 가정 경제를
도맡을 만큼 강단 있고 부지런한 분이셨다. 그 연세에 드물게 전국 어디든
가는 데마다 친구분들이 계실 만큼 교우관계도 남다르시다.
몇 년 전 아이들 결혼식 때는 갓난아기 때부터 유달리 귀여워하셨던
외손주들이어서인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며 꼬깃꼬깃 모아두신 거액의
뭉칫돈을 조용히 건네시기도 했다. 그랬던 분이 어느 날부터 평소의
당신답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계신다.
아무도 대신해 줄 수 없는 건강.. 이 세상 어느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세월의 강.. 어서 들어가라며 차창 밖으로 손을 흔드시는 당신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나도 모르게 자꾸만 눈시울이 붉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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