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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세상을 사는 데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 이렇게 살면 괜찮은 것이고, 저렇게 살면 잘못된 것일까? 거기에는 한 가지 전제가 존재한다. 바로 나로 인해 다른 이에게 피해를 주지 말아야 한다는. 그것만 지켜진다면, 자신만의 잣대로 누군가의 삶을 함부로 도마 위에 올리는 것은 지극히 위험한 행동이란 생각이 든다. 자신의 관점과 다르다는 이유로 옳고 그름을 쉬이 재단하려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자신의 삶은 돌아보지 못한 채 남의 인생에 관해 논평만을 일삼다가, 뒤늦게 숨겨진 본인의 과오가 세상에 드러남으로써 몇십 년 공든 탑을 일시에 무너뜨리는 이들을 심심치 않게 보아왔다. 정작 그들이 똑바로 살라며 충고한 이들은 자신들보다 훨씬 더 떳떳하게 잘 살아가고 있음에도. 누가 누구를 충고할 만큼 티끌 한 점..

지인과 지역 재개발지구 현장을 다녀왔다. 그가 직접 참여한 '가림막 프로젝트' 현황을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각 분야별 예술인들이 힘을 모아 공사 현장 가림막의 외부 미관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곳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 사회 건설 현장에는 공사 이외 다른 부분을 생각할 여유가 그다지 많지 않았다. 최근 들어 그곳에 문화를 생각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삶이 절박한 사회에서 문화는 존재하기 어렵다. 그보다 더 시급한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문화가 숨 쉴 저변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가 생겼다는 의미와 다름 아니다. 우리보다 일찍이 풍족한 문명 사회를 이룩했던 유럽 선진 여러 나라를 보더라도, 해마다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관광..

흔히들 '비전 있는 회사'라는 말을 하곤 한다. 여기에서 비전(vision)이란 시야, 보이기, 시력 등의 뜻을 지닌 영어 단어로써, 우리말보다는 원어 자체로 더 많이 쓰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여기에 어울리는 적절한 우리말은 무엇일까? 아마도 '미래'라는 단어가 본래의 의미에 가장 근접하지 않을까 싶다. 따라서 '비전 있는 회사'란 '내일의 희망이 보이는 회사', '미래의 발전성을 기대할 수 있는 회사' 정도로 풀이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비전 있는 회사'란 어떤 조직을 두고 이르는 말일까? 여기에는 적어도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본다. 첫째, 직원들의 의견을 수렴할 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기업주 혼자만의 독선적인 생각이나 몇몇 특정인만의 밀실정치로 모든 정책이 수립되..

아무리 디지털이 지배하는 세상일지언정 '그래도 신문은 역시 종이로 된 것을 봐야 제맛'이라는 생각을 오랫동안 고수해 왔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같은 라인에 종이 신문을 구독하는 집이 채 몇 손가락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 생각을 지금껏 유지해 왔었다. 결혼 후 쭉 이어왔으니까 어림잡아 30년이 훨씬 넘은 셈이다. 비용으로 치자면 몇백 만원이 넘는 금액일 것이다. 그런 신문과 마침내 결별을 선언했다. 지면만 늘어났지 더 이상 볼 만한 내용이 없다는 것, 뉴스 공장이라기보다는 공해 배출소에 가까워졌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정작 중요한 국민들의 삶은 그들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난 지 오래. 요즘 방송과 언론엔 온통 정치 이야기뿐이다. 알고 보면 정치와 언론은 비즈니스 동반자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 정치인들은..

외출에서 돌아오는 길. 아파트 현관에 놓인 세대별 우체통마다 웬 낯선 물건이 하나씩 꽂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살펴보니 새로 입주하는 같은 라인 주민이 자신의 집 인테리어 공사에 따른 불편에 관해 이웃들의 양해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거기에는 편지와 함께 쓰레기 봉투 하나씩이 들어 있었다. 이웃에서 종종 비슷한 공사를 하긴 하지만 이토록 섬세하고 진심이 가득한 인사는 처음이었다. 사람의 일이란 때론 상대방의 마음을 얻는 것임을, 저렇듯 적은 비용으로도 더없이 큰 행복을 선사할 수 있음을 배려심 가득한 이웃을 통해 배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