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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운동을 하다 보니 웬 카트 하나가 길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매장에서 손님들이 물건을 구입할 때 사용하는 것이었다. 카트는 매장 내에서만 사용하고, 계산을 마치고 난 뒤에는 별도의 개인 쇼핑백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쯤은 누구나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순전히 개인의 편의만을 위해 본인의 집까지 끌고 와서는 저렇게 아무렇게나 내버려둔 것이다. 어쩌면 저 사람도 그래서는 안 된다는 걸 알고는 있을 것이다. 지키는 사람은 소수이고, 저지르는 사람이 다수일 때 세상의 질서는 온전히 유지되기 어렵다. 결국 모두가 내 맘 같지 않기에, 이웃의 불편은 나 몰라라 하고 본인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마음들 때문에 우리 사회에 법이 존재하는 건 아닐까.

오랫동안 만났지만 좀처럼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이들이 있다.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기는 하지만 좀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 남의 사생활은 알고 싶어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그것은 철저히 감추려는 이들이 있다. 서양에서 비롯된 남자들의 악수가 본래 내 손에 무기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제스처였다고 하지 않는가. 누군가와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드러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자신은 숨긴 채 남의 삶만을 엿보려는 이들에게는 아무도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다. 그런 이들에게선 무언가 모를 벽이 느껴진다. 왠지 나의 비밀만을 캐내려는 파파라치 같은 경계심에 나 역시 선뜻 속내를 드러내기가 망설여진다.

나는 기본적으로 자신은 돌아볼 줄 모르고 남 탓만 하는 이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상대방을 배려할 줄 모르고 자신의 생각만을 고집하는 이들도 좋아하지 않는다. 세상에 행동거지가 완벽한 사람은 없다. 나쁘기만 한 사람도 없다. 누구에게든 일장일단이 존재한다. 그것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은 누구나 자아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그것은 한 마디로 자신을 돌아보는 일이다. 내가 한 말이나 행동이 자칫 누구에게 상처를 주지는 않았는지, 나는 그저 웃자고 한 말인데 그것이 누구에게는 치부를 건드리는 행위가 되지는 않았는지 등등. 자아성찰은 겸손을 배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것을 통해 좀 더 발전되고 나아지는 나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페이스북 친구와 트위터 팔로워는 실제 사람들과 우정을 쌓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온라인 친구는 수십 명이지만 절친한 친구는 거의 없다면 인간관계가 건강하다고 할 수 없다. - Celeste Headlee 중에서 - 오늘날의 인간관계는 상당수 온라인상으로만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문화에서 비롯된 현상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서도 일 년 내내 전화 통화 한 번 없이 온라인으로만 연락을 주고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디지털 소통을 신봉하는 이들은 그것이 시간도 절약할 수 있고 제한된 시간에 다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목소리 교환 한 번 없이 온라인상으로만 연락하는 이들에게는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들을 진정한 친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지..

대중교통을 자주 이용하는 편이다. 오가다 보면 언제나 예외 없이 눈살을 찌푸리는 일이 있다. 지하철이 마치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되는 양 남의 시선을 조금도 개의치 않고 큰소리로 통화를 하는 사람들이다. 상식이 있는 사람이라면 입을 가리고 속삭이듯 조용히, 짧게 통화를 하거나 나중에 다시 전화하겠다며 끊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일면식도 없는 타인들이 왜 알 필요도 없는 남의 사사로운 개인사를 장시간 듣고 있어야 하는가. 공교롭게도 그들 대부분은 중년 이후의 사람들이었다 어린 사람들도 다 알고 있는 상식을 그들은 여태 배우지 못했다는 말인가. 아니, 그런 기초적인 것을 꼭 배워야만 아는가. 지금껏 대중교통 안에서 그들처럼 통화하는 젊은이를 보지 못했다. 공중도덕의 기본 - 나로 인해 다른 이에게 피해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