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누군가 나를 기억해 준다는 것 본문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직장에서 만난 인연은 퇴사를 하고 나면 인간관계도 끝이 나는 게 일반적이다. 거래 관계로 만난 사람 역시 마찬가지다. 언제까지 변치 않을 것 같지만 이해로 맺어진 사이이기에, 그 관계가 다하고 나면 다시 연락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나 또한 인간적으로 가까웠던 몇 명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연락이 끊어졌다. 떠난 이들뿐만이 아닌, 남아 있는 이들 또한 같은 마음일 것이다. 어쩔 수 없는 조직의 생리이기도 하다.
새해나 설날, 혹은 추석이 되면 나에게 잊지 않고 안부 인사를 보내는 이가 있다. 옛 직장의 청소를 담당하던 아주머니다. 대개 직장에서 궂은일을 맡은 이들에게 관심을 갖거나 눈길을 보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경비나 청소를 담당하고 있는 이들이 그들이다. 대체로 세상은 직업 또는 지위와 인격을 동일시하려는 경향이 있다. 자신보다 지위가 높으면 한없이 비굴하고, 낮으면 한없이 오만하거나 무시하려는 심리가 그것이다. 내가 우연히 그녀에게 눈길이 머물게 된 건 그녀의 남다른 성실함 때문이었다.
흔히 월급을 받고 일하는 직원들이 자신이 맡은 업무를 주인의식을 갖고 임하는 경우는 생각처럼 많지 않은데, 그녀만은 예외였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본인이 담당하고 있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굳이 보려고 하지 않아도 누구에게나 저절로 보일 정도였다. 때로는 휴일에도 자진해서 출근해 정해진 일을 마쳐야 직성이 풀리는 분이었다. 게다가 늦은 나이까지(나이가 제법 많았다) 일할 수 있는 직장이 있다는 사실에 더없이 고마워했다.
나는 고위직이었기에 내가 먼저 다가가지 않으면 그녀와는 말 한마디 나눌 기회가 없었다. 비록 주인은 아니었지만, 회사를 위해 애쓰는 그녀를 위해 나만의 방법으로 무언가 응원을 해 주고 싶었다. 생각해 낸 것이 다른 직원들 눈에 띄지 않게 평소보다 조금 일찍 출근해(보통 청소하는 분들은 새벽 5시 정도면 출근한다) 그녀의 방에 빵이나 김밥, 음료수, 과일 등의 먹거리를 이따금씩 넣어주는 것이었다(그녀만의 공간이 따로 있었다). 처음에는 누가 갖다 놓았는지 몰랐다가, 같은 일이 거듭되다 보니 결국 나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런 기간이 꽤 길었다. 내가 퇴직할 때까지 계속했으니까.
또 한 번은 회사의 매출이 좋던 어느 해인가 전 직원이 단체로 해외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배우자까지 동반한 여행이었다. 그런데 외국행 비행기를 탄다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내부적으로 특별히 어울리는 사람이 없는 데다, 자칫 그들 내외만이 외톨이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현지에 도착해 보니 두 사람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안 되겠다 싶어 부부를 따로 불러 경치 좋은 곳을 다니며 그들만의 기념사진을 열심히 찍어주었다. 그녀로서는 해외여행이 그때가 태어나서 처음이었다.
나중에 따로 인화까지 해서 전해주었더니 그렇게 고마워할 수가 없었다. 여태 살면서 이렇다 할 기념사진 한 장 없었는데, OO 님 덕분에 난생처음 인생 사진이 생겼다며 좋아했다. 그녀의 휴게실에는 언제나 내가 찍어준 사진이 마치 무슨 훈장처럼 걸려 있었다. 언젠가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녀가 내게 조용히 말했다. 지금껏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회사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이 바로 OO 님이라고.
그것 때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퇴직을 한 지 벌써 여러 해가 지났음에도 그녀는 잊지 않고 나의 안부를 종종 묻곤 한다. 이번 새해 역시. 세월이 지나도 누군가 나를 잊지 않고 기억해 준다는 것 -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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