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걱정스러운 지방의 미래 본문
다니다 보니 충남 예산은 부쩍 자주 찾는 여행지가 되었다. 가까운 데다, 부담 없이 바람 쐬러 다녀오기에 이만한 곳도 없다. 그곳에 관한 한 토박이만큼은 아니지만, 어설픈 선무당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시간이 한가로운 어느 날 오후 점심을 먹고 장항선 무궁화호에 몸을 실었다. 이날 계획은 다른 곳 다 제쳐두고 시내 한 바퀴를 걸어서 돌아보는 것이었다. 다음 날 출근을 감안해 동네 마실 가는 기분으로 가볍게 떠난 여행이라 여유 시간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차 여행은 굳이 어디를 구경하지 않더라도 오가는 과정 그 자체만으로도 여행의 기분을 한껏 즐길 수 있다.
여느 시골역과 달리 예산역은 개성이 돋보인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나름대로 예술성을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해 농사를 마친 과수원은 다음 해의 풍성한 출산을 위해 긴 겨울잠을 준비하고 있었다.
도시의 규모에 비하면 꽤 커 보이는 교회. 갈수록 인구가 줄고 있는 시골에서 주일이면 저 큰 예배당에 얼마나 많은 신도가 들어설까 궁금하다.
한 외식 사업가에 의해 존재감 없던 시골을 일약 전국적인 핫 플레이스로 만든 예산상설시장. 이곳을 찾는 이들은 대부분 젊은 세대, 그것도 외지인들이다. 백OO 씨는 정말 대단한 사업가이자 아이디어맨이다.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하는 능력이 탁월하다.
예산상설시장과 시내를 돌아보며 느낀 점.. 상설시장 한곳만 북적인다고 해서 예산이란 도시 전체의 미래를 같은 기대감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나로선 의문이다. 이곳을 제외한 나머지 시내 풍경은 여느 시골과 다름없이 적막강산이라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는 내 고향을 비롯한 다른 대부분의 지방 소도시에서 공통적으로 목격하게 되는 현상이다. 젊은이는 온데간데없고 어쩌다 만나는 얼굴들은 대체로 나이 지긋한 노인들뿐이었다.
다시 기차를 타고 올라온 도시는 지방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넘쳐나는 차량 행렬, 출퇴근길이면 콩나물시루처럼 붐비는 버스와 지하철, 불야성처럼 빛나는 밤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전혀 딴 세상에 와 있는 듯했다. '지역 균형 발전'이란 명목 아래 적지 않은 기관들이 지방으로 옮겨가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균형 발전'을 기대하기는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내가 아는 한 근무자 혼자만 마지못해 지방에서 체류하다가, 주말이면 가족이 있는 대도시로 올라오는 경우가 대다수이기 때문이다. 의도했던 인구 분산 효과는 전혀 없이 건물만 덩그러니 지어 놓는다고 지역이 발전하는 걸까. 여행을 떠나 지방에 다녀오는 날이면 우리의 정치 현실을 보는 것만큼이나 가슴이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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