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생일에 부치는 단상 본문
오늘은 OO 번째 맞이하는 내 생일이다. 나의 세대는 대부분 음력으로 생일을 지내다 보니 매년 날짜가 일정하지 않다. 게다가 다들 평일에는 직장 일로 바쁜 터라 구성원이 다 모일 수 있는 한 주 앞선 주말을 이용해 행사를 치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아이들이 출가한 뒤로 부모의 생일은 명절을 제외하면 모처럼 온 가족이 모일 수 있는 유일 또는 유이한 날이기도 하다.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귀여운 손주들이 새로이 축하 사절에 가세했다는 점이다.
나의 성장기에 비하면 요즘의 생일상은 거의 수라상(궁중에서 왕과 왕비에게 올리는 밥상)이나 다름없다. 그만큼 화려해졌다는 뜻이다. 예전에는 생일이라고 해봐야 평소보다 한두 가지 반찬이 더해진 정도에, 주인공에게는 고봉밥을 퍼주며 '귀빠진 날이니 많이 먹으라'며 말 한마디 더해주는 것이 축하 인사의 전부였다. 오늘날처럼 축하 노래나 선물은 언감생심 꿈도 꾸지 못했다.
그런 성장기를 거친 까닭인지 가장의 생일이랍시고 불러주는 가족의 축하 노래에 적응하는 것이 매번 어색하다. 벌써 수십 년간 되풀이되는 일임에도 그렇다. 아이들이 건네주는 봉투를 받기도 여전히 망설여진다. 왠지 자식들이 주는 돈은 반갑기보다 애처로운 마음이 더 앞서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희들 딴에는 도리를 다한다고 신경 써서 준비한 것을 거절하기도 뭣해 이래저래 참 고민스럽다. 시골에 혼자 계시는 어머니들이 자식들이 보내오는 용돈을 한 푼 쓰지도 못하고 모아만 두었다가 떠나는 사례가 많다는 것도 어쩌면 이런 마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부모가 자식들에게 기대어 사는 시대는 지났다. 나 역시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저 제 식구들끼리 화목하고 건강하게만 살아주면 그것으로 효도는 충분하다는 것. 부모 역시 이 세상에 존재하는 동안 건강 면에서나 경제적으로 아이들에게 걱정 끼치지 않고 살 수만 있다면 그것 이상 더 바랄 건 없다는 것 - 불현듯 생일을 맞아 스치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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