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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갑의 의미 본문
조선시대 일반 백성의 평균수명은 35세였다고 한다. 27명의 왕 중 예순을 넘긴 경우는 5명(영조, 태조, 고종, 광해군, 정종)에 불과했다. 그중 가장 오래 산 왕은 영조로 83세까지 살았다. 백성들의 평균수명에 비하면 거의 두 배 반이나 더 살았으니 기적에 가까운 장수였다. 그러다 보니 회갑을 맞이한다는 건 당시로선 엄청난 일이어서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일대가 떠들썩할 만큼 성대한 기념행사를 열었다. 그 같은 풍습은 현대에 이르러서도 한동안 이어졌다. 나의 젊은 시절만 해도 부모 회갑이라며 손님을 청하는 일은 흔한 일상이었다.
나의 선친의 회갑 또한 성대하게 치렀다. 내가 결혼을 한 뒤 일 년쯤 지났을 때였다. 그의 무병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온 마을 사람들이 동원되어 며칠간 음식 준비를 한다고 바빴다. 같은 동네는 물론이요, 인근 마을과 아버지의 지인, 도시에 사는 친인척들까지 일일이 다 기별을 했다. 하지만 요즘은 누구도 회갑 잔치를 하지 않는다. '육십은 나이도 아니다'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돌 정도이다. 그저 가족 단위로 모여 간단히 밥을 먹거나, 해외여행으로 갈음하는 선에서 그친다. 인간의 수명이 길어지면서 생긴 변화이다.
막냇동생이 회갑을 맞이했다. 축하를 위해 동생네 가족과 우리 형제들까지 가세했다. 오늘날의 추세에 비추어 보면 '어마어마한' 규모다. 덕분에 모처럼 동기同氣 간 우애를 다질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다. 조카 남매가 아버지의 '무병장수'를 축하하기 위해 멋진 현수막까지 준비했다. 막연히 말로만 하기보다 무언가 시각적인 상징물을 게시하는 건 작지 않은 느낌의 차이를 지닌다.
동생은 지금껏 국내 유수의 언론사에서 사진기자로서의 길을 걸어왔다. 드물게 그는 자신의 직업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겼고 사랑했다. 직업을 통해 배우고 익힌 재능을 혼자만의 것으로만 간직하지 않고 이웃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었다. 형제와 친척, 지인 집안의 대소사가 있으면 자진해서 카메라를 메고 어디든 달려갔다. 자신의 직업을 그처럼 사랑한 이는 일찍이 보지 못했다. 그에게 사진은 직업이자 취미였고 존재의 의미 그 자체였다.
그런 그가 정년퇴직을 앞두고 의미 있는 저서를 발간했다. 가족사진의 중요성을 강조한 내용이다. 가족이 모이는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말고 그때마다 어떤 형태로든 꼭 기념사진을 찍어두라고 역설하고 있다. 지나고 나면 그것들이 모이고 모여 더없이 가치로운 역사의 기록물이 될 거라는 얘기다. 사진에 관한 그의 평소 철학을 집대성한 셈이다. 열심히 살아온 사진기자로서의 능력이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는지 동생은 퇴직과 동시에 또 다른 환경에서 기자로서의 삶을 계속해서 이어갈 예정이다. 새롭게 펼쳐질 그의 앞날에 더 많은 발전이 함께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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