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의 아름다운 세상
아는 만큼만 보이는 세상 본문
인간의 모든 변화는 관심으로부터 출발한다. 대상이 무엇이든 태어날 때부터 잘하는 사람은 없다. 오랫동안 그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나름대로 열심히 시간과 노력을 투자했기에 모종의 결과물이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저마다의 개성이 드러나는 외모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평생토록 관리를 해야 하는 것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헤어스타일이요, 다른 하나는 패션이다. 패션(fashion)이라는 영어 단어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지만, 일반적으로 옷차림 또는 차림새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다.
머리의 경우 무인도에서 혼자 사는 삶이 아닌 이상 주기적인 관리가 필요하다. 머리 손질은 나를 위해서도 해야 하지만, 남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내 인생 내가 사는데 누가 감히'라고 반문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에서 다른 사람과 어울리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나는 사회생활을 하면서 꽤 오랫동안 한 가지 헤어스타일만을 고수했다. 반 곱슬이다 보니 너무 길면 자칫 '잭슨 파이브'처럼 보일 수 있다는 생각에 늘 짧게 자른 뒤 '올빽'만을 고집했다. 그것이 나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는 나대로의 믿음 때문이었다.
퇴직을 하고 난 뒤 기존 스타일을 계속 고수할까 하다가, 이제는 자유인의 신분이 되었으니 한 번쯤 새로운 스타일을 경험해 보기로 했다. 길이를 좀 더 기르고, 가르마도 이것저것 다양하게 시도해 보았다.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지만 어느 순간 스스로 괜찮다 싶은 스타일을 하나 발견했다. 주위의 평가도 대체로 긍정적이었다. '멋지다', '예술가 같다' 등등. 어른들뿐만 아니라 어린 조카들까지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반응들을 보내왔다. 이후부터는 쭉 새로운 스타일을 견지하고 있다. 짧은 머리에 '올빽' 스타일이 가장 잘 어울린다는 과거의 생각은 다른 세상을 경험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고정관념이었던 것이다.
패션의 경우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면 열악하기 이를 데 없었다. 최소한의 기본조차 몰랐다. 당시에는 아예 모른다는 자체를 몰랐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비로소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난 시절의 내가 부끄럽다는 건 지금의 나는 그만큼 발전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패션에 조금씩 눈을 뜨기 시작한 건 지천명이 넘어서면서부터였다. 새롭게 관심을 가지게 되니 전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획기적인 변신까지는 아니지만, 지난날의 나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는 늘 아내를 통해 옷을 구입했는데, 이제는 눈에 띄는 옷이 있으면 누구에게 묻지 않고 나 혼자서도 구입할 정도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러한 변화가 가능했던 건 새로운 세상을 향한 나 스스로의 지속적인 관심과 호기심 덕분이었다. 그 과정을 통해 깨달은 교훈은 세상은 아는 만큼만 보인다는 사실이었다. 살아 있는 동안 끊임없이 생각의 지평을 넓히려는 노력 없이 혼자만의 고정관념에만 갇혀 있다 보면 평생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 즈음에 만났던 인상 깊은 문구가 있었다. 바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유홍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중에서)라는 문장이었는데, 이 말은 이후 내 인생의 중요한 지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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